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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21. 2022

My Lovely Jazz List

혼자 즐기는 와인과 함께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알코올 중독자였던 저자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각자의 음주 생활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혼자 살고 있는 분과 배우자가 술을 하지 않는 어떤 분은 와인 한 병을 땄을 때 향이 날아가기 전에 다 먹고 싶은데,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 남은 걸 버리게 되어 늘 안타깝다고 했다.


남들과는 반대로 도수가 낮은 스위트 와인만 찾는 나는 와인의 맛과 향도 음미할 줄 모르고, 개봉하고 나면 향이 날아가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른다. 밖에서 먹는 술이 부담스럽고, 역시 배우자가 즐기지 않아 집에서 종종 혼자 마시는 내게 맞는 술이 와인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 병의 와인을 열어서 한 달 동안 먹을 때도 있다. 빨리 마시고 더 달달한 와인을 열고 싶은데, 줄지도 않고 버릴 배짱도 없어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때면 와인을 한 잔씩 따라 놓고 한모금 마시고 울고, 한 모금 들이키고 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는 했다. 혹은 주말 밤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때면 한 잔씩 따라놓고 재즈 리스트를 재생한다. 그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 와인 마실 때 안주는 뭘로 준비하느냐고 묻길래, 별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


안주는 음악이야!


내 말이 끝나자 야유와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 스스로도 몹시 오글거렸다. 와인에 대해 맛도 향도 뭣도 모르면서 한껏 멋만 부린 말 같아서 주워 담고 싶었다. 친하고 편한 동료들이어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지만 놀리기 좋아하는 누구는 오 년치 놀림감이라고 좋아했다. 으으 걸렸다... 그래, 아마 나라도 그렇게 놀렸을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지만 그건 정말 사실이었고, 누구나 입문 시기는 거치는 법이고, 혼자 먹을 한 잔에 안주를 챙기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한 잔 이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도수가 낮은 한 잔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달아오르니까. 다만 초보자라 할지라도 분위기만은 즐기고 싶었던 거다, 엉엉.


몇 번을 놀려먹은 동료가 오늘 아침에는 진지하게 묻는다. 와인 관련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내 안주 음악이 뭔지 궁금해졌다고.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했더니 스크린샷으로 모두 담아갔다. 그러고 나니 오 년치 부끄러움이 이 년쯤은 삭제된 느낌이다. 좋은 음악을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그래서 스위트 와인과 함께 즐기기 좋은 달달한 재즈 음악 소개해 본다.




1) 윤석철 트리오, 〈둘의 대화

앨범의 곡 소개글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한 걸까’라는 심플한 문장인데, 음악을 들어 보면 여기서 '그때'란 오래 전은 아닌 것 같다. 제부터인지 모르게,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그 누군가가 괜히 신경 쓰이는 주말 오후의 느낌이 든다.


윤석철 트리오 - Conversation Between Two (둘의 대화)


2) Red Galand, 〈Alomst Like Being In Love

‘거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이라는 제목처럼 사뿐한 멜로디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연인에게 다가가 눈을 가리는 순간,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음악.


Red Garland - Almost Like Being In Love


3) Eddie Higgins Trio,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는 이 곡은 서로의 사랑을 인한 것 같은 산뜻함이 묻어난다.  이상 더 재지 않아도 좋을 평온, 눈만 마주쳐도 잔잔해지는 마음담긴 듯한 곡이다.


Eddie Higgins Trio - A Lovely Way To Spend An Evening


4) Hank Jones, 〈My Romance

미국의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의 곡이다. 날씨가 아주 맑고 하늘이 높은 날, 조금은 진지해진 사이라면 이 곡으로 이런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직 당신의 사람입니다. 우리 앞에는 아름다 날들이 펼쳐져 있어요."


Hank Jones - My Romance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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