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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26. 2022

작은 감탄을 터뜨리는 맛

나의 소울푸드, 두부 예찬


친구가 추천해준 《요즘 사는 맛》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요조와 김혼비, 천선란 등 작가분들과 박정민 배우 등 여러 글 쓰는 사람들의 미각과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 맛에 관한 모음집이다. 소개하는 글에 적어놓은 것처럼 ‘작은 감탄을 경험하는 삶’이 나의 모토인데, 그와 닮은 이 책의 카피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일상에 감탄을 더하는,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는,
매일의 맛, 매일의 낙.


이 에세이의 주제를 내가 넘겨받는다면 나는 어떤 음식을 글 쟁반에 차려볼까? 만약 누군가 내게 삼시 세끼, 일 년 열두 달 동안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하는 조건으로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고를 음식이 있긴 하다. 맛과 영양이 풍부하고 포만감도 있으면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두부. 뽀얗고 탱글탱글해서 아기 엉덩이 같은 고운 결을 가진 두부.



두부의 원료인 콩은 식물성 단백질의 대표 주자다. 동물성 단백질보다 식물성을 선호하므로 대체로 ‘~에서 나는 고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숲에서 나는 고기라고 불리는 버섯도 좋고 산에서 나는 고기라는 고사리도 좋다만 애석하게도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싫다. 밥 속에 들어있는 콩을 어른들이 억지로 먹으라고 할 때부터 싫었고, 콩에서 비린 냄새가 나서 콩국수도 먹지 못한다.


콩을 가공해서 부드럽게 만들고 비린 맛도 없는 두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두부를 만들려면 끓인 콩에 간수(염화마그네슘)나 황산칼슘을 넣어 응고를 시키는데 물기가 많이 남도록 만든 것이 연두부고, 바로 건져 올린 것이 순두부다. 틀에 넣고 힘을 가해서 물기를 꼭 짠 것은 판두부가 된다.




연두부는 연한 간장을 부어서 아침 식사나 애피타이저로 가볍게 먹으면 좋은데, 찰랑찰랑하고 매끈한 자태를 보면 숟가락을 찔러 넣기가 미안해지지만 부드럽게 녹는 맛을 한 번 보면 언제 망설였냐는 듯이 자꾸 숟가락이 간다. 순두부는 바지락이랑 애호박을 넣고 고추기름으로 매콤하게 끓인 다음 달걀 한두 개를 깨 넣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판두부는 잔치나 제사, 모둠전을 시킬 때 나오는 것처럼 소금을 약간 뿌려 노릇하게 부쳐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진리다. 부침두부를 탄수화물 밥 대신 주식으로 삼고 싶을 만큼 좋아해서 손이 작은 나지만 두부는 늘 큰 걸로 사둔다. 또는 데쳐서 볶은김치과 먹어도 맛있고, 숭덩숭덩 잘라서 찌개에 넣어도 좋고, 물기를 짜서 달걀 볶음밥을 할 때 함께 넣어 볶으면 간편하고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두부조림은 말할 것도 없는 일등 반찬이다.


맵칼한 두부두루치기는 중독적인 맛으로 내 입맛을 사로잡는다. 대전에는 두부두루치기를 전문으로 하는 노포가 많은데 칼국수 사리와 함께 주는 곳, 시큼한 총각무와 같이 끓여내는 곳, 오징어를 곁들여 끓여내는 곳 등 요리 방식도 개성도 다양하다. 자주 갈 수는 없으니 그 맛이 그리워서 종종 만들어 먹는다.



이국적이고 특별하게 두부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마파두부는 간편하게 중화풍 덮밥으로 먹기 좋고, 요즘 떠오르는 식재료인 두부면은 팟타이처럼 볶아 먹으면 태국 음식점이 따로 없다. 두부가 너무 많다면 얼려 두어도 좋다. 얼린 두부는 얼리지 않은 것보다 고단백이 되며, 조직이 치밀해지고 식감은 쫀득해진다. 이를 녹여서 튀긴 다음 달콤한 소스를 부어 두부강정을 해 먹으면 닭강정 맛이 난다.


두부를 만들면서 나오는 두유와 비지도 두부 못지않게 좋다. 두유는 아침 대용으로 자주 먹고 라떼나 밀크티를 주문할 때 우유 대신 두유로 바꾸면 고소함이 더하다. 콩비지는 할머니가 해주셨던 방식대로 가끔 사다가 신김치를 넣고 바글바글 끓이면 소식좌 그릇 정도는 먹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도 청국장찌개에 두부 반 모를 잘라 넣고 폭폭 끓여냈다. 역시나 가족들도 잘 먹어서 두 번을 더 떠왔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두부를 먹으며 감탄을 했다. 이렇게 허여뭉근한 것이 어찌 이 조화롭고 맛 좋을까! 박해서, 사람과 자연의 건강을 해치지 않아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더 좋은 두부. 두부는 우유처럼 정기구독할 수 없을까?





책 정보 : 《요즘 사는 맛》 김겨울 외 글, 위즈덤하우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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