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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l 09. 2022

오래된 시와 오랜 그리움이 된 학교


@지운 작가님께서 쓰신 비 냄새에 관한 아름다운 글을, 감상에 젖어 읽는 중이었다. 비를 노래한 시도 함께 올라와 있었는데 시를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운 이름이 시에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학교 이야기를 써보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니 바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흔든 김종삼 시인의 시는 다음과 같다.


〈비 옷을 빌어 입고〉

온 종일終日 비는 내리고
가까이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린다

이십팔二十八년 전
선죽교善竹橋가 있는
비 내리던
개성開城,

호수돈 고녀생高女生에게
첫사랑이 번지어졌을 때
버림 받았을 때

비옷을 빌어 입고 다닐 때
기숙사寄宿舍에 있을 때

기와 담장 덩굴이 우거져
온 종일終日 비는 내리고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릴 때


시를 읽는 순간 내가 그 첫사랑의 대상인 양 무척 설렜다. 시인을 애태운 나의 선배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그에게 이토록 진한 영감을 주었을까. 그 첫사랑이 얼마나 짙고 아렸기에 비가 올 적마다 어느 곳에서든 떠올리도록 만들고, 버림받은 뒤에도 그 빗소리를 사랑스러운 선율로 들리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첫사랑과 아픈 추억마저 달래주는 정겨운 비를 엮어 노래한 시가 무척 아름다운데도, 나의 시선은 자꾸 학교 이름에 머문다.





‘호수돈 여고’라는 특이한 이름은 미국 버지니아 지역의 감리교 커뮤니티 홀스턴Holston을 한자로 음차한 이름이다. 1899년 개성에서 개설하고 6.25 전쟁 때 남쪽으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123년의 긴 역사만큼 굵직한 이름들도 많다. 모윤숙 시인의 모교이고 교가는 무려 가곡 〈그 집 앞〉을 만든 두 음악가, 이은상 작사 현제명 작곡이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교훈은 선교 정신을 이어받아서인지 〈남을 위해 살자〉였는데, 갓 입학한 고등학생이 듣기에는 어이가 없었던 저 문장이 지금 보니 너무도 이타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철없던 시절이 반성이 된다. 저 문장 밑에서 3년을 교육받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부끄럽지만 스스로를 위해 살기에도 벅찬 상태인 나를 본다.



오래된 학교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일자로 된 중학교 건물과 천장이 높은 강당 건물을 제외한 ㄱ자 건물이 내가 교육받던 곳이었는데, 중간 지점이 달팽이 계단이었고 거기서부터는 제한된 공간이었으나 그런 금기는 당연히 깨뜨려야 하는 것이었다. 꼭대기에 작은 다락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음산해서 다시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그와트 마법 학교가 따로 없었다.


ㄱ자 건물 안쪽으로는 테니스 코트가 있어서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체육 시간에 모두 테니스를 배워야 했다. 그러나 테니스 라켓은 내게 너무 무거웠고 공을 받아낼 때마다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덕분에 내 스코어는 늘 러브여서 체육 시간마다 큰 소리로 사랑! 사랑을 외쳤다.


계단 너머 꺾어진 은 1층이 2층이 되고 지하가 1층인 경사진 구조였고 폐쇄된 화장실과 기도실이 있었다. 우린 종교 시간에 기도실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못되고 용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꼭 분신사바를 외치며 귀신을 불러내려고 시도했다.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어야 했다.



무교 나는 기도 시간이나 수업시간마다 떠들고 딴짓을 해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어야 하는 벌을 자주 받았다. 그렇지만 테스트를 거쳐 들어간 합창부 활동은 열심이었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표식을 늘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고, 그 배지를 보면 같은 학년인지 선배인지 따지지도 말고 90도 각도로 인사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그걸 어기면 끌려가서 암막 커튼이 쳐진 음악실에서 30분 이상 혼나야 했다. 그런 폭력의 시간들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노래 연습 반 혼나는 시간 반이었던 고되고 억울한 날들이었지만 함께 목소리를 맞췄던 순간은 짜릿했다. 대부분 가스펠 송이었는데 거의 유일한 팝이었던 〈A whole new world〉를 부를 때마다 신이 났다.


학교명만큼 유명했던 것이 긴 머리와 교복이었다. 천편일률적인 교복과 다르게 브라운 톤에 사각 네크라인 조끼와 플레어스커트의 조합이 학생이라기보다는 맵시 좋은 아가씨 같은 이미지를 풍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자 ‘언덕 위의 기생집’이라는 짓궂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이미지가 김종삼 시인의 시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한 편의 시와 하나의 단어가 나를 고등학생으로 탈바꿈시킨다. 당시에는 집에서 멀어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가 너의 고등학교가 바로 코앞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음에도 모르는 척 해왔는데, 다음번에 엄마 집에 가면 학교로 과거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인용한 시 : 〈비 옷을 빌어 입고〉, 《김종삼 전집》 김종삼 글, 나남출판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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