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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29. 2022

[그림독서록 #4] 월든

소박하고 고유하기에 아름다운 삶



‘불멸의 책’, ‘인생의 책’, ‘경이로운 책’… 《월든》은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책이다. 이 책의 무엇이 1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찬사를 거느리게 하는 것일까?


온전히 음미하지 못해 다시 읽은 《월든》에서는 읽기를 멈추게 만드는 문장들을 더 자주 마주쳤다. 깨어있음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시인의 자세와 같았으며, 비판적이면서도 문학적 비유로 서술하여 유연하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소로는 집단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근거를 따져 소유의 필요성을 사유했다. 그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파괴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쉼 없이 고찰한다. 창문 하나, 땔나무 한 토막까지 필요를 따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증명되지 않은 진리를 거부했다. 세상의 진리란 하나의 견해일 뿐이라는 원칙으로, 의심하고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진리를 개척했다. 심지어 ‘이웃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이 실은 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세속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그저 하나의 삶의 종류일 뿐이며, 사람도 자연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의 방식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시민의 불복종》에서 그는 납세를 강요하는 주 정부에 인두세와 교회세를 납부하지 않을 이유를 논증한다. 그가 동의하지 않은 침략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 반대하고, 다니지도 않는 교회에 헌금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고 하룻밤이지만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시대를 앞선 소로의 사상은 톨스토이와 간디 같은 인도주의자, 민주주의자,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소로는 권위에 저항하면서도 체념에 빠지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허무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법을 그는 이미 갖고 있었다. 그 치유법이란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의 주변에서 삶의 기쁨을 찾는 것이다. 종교나 거창한 철학을 따르지 않고도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나는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철도로 대표되는 문명은 소로의 철학과 대척점에 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고 주택을 소유하면서 오히려 그것들의 도구나 노예가 되어 버렸고, 철도를 놓음으로써 ‘철로가 사람 위를 달리’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런 문명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오히려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실험하기 위해 그는 숲으로 들어가 손수 집을 짓고 최소한의 양식을 제 손으로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숲에서 관찰하는 법을 배웠고, 만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요 속에서 그는 기차가 무엇을 싣고 누구에게 가는지 상상할 수 있었고, 부엉이 소리를 여인의 구슬픈 울음으로 들었다. 숲은 모깃소리마저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서사시로 들려주는 곳이다. 자연 속의 삶은 우월주의에 빠진 인간성을 철저히 분해하여 동물과 식물과 그 밖의 모든 자연을 인간과 동등한 타자로 인식하게 한다.


《월든》은 자연 가까이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서이자 실천적 철학서다. 외부 세계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길이라는 것을 《데미안》을 비롯한 여러 심리학 책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그가 오두막에서 산 기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그가 숲에서 세운 철학대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실천해보기 위해 숲을 떠났으리라 추측해본다. 자연친화적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은 숲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월든》은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찾기 힘든,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비추는 거울로써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책 정보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글, 강승영 번역, 은행나무 펴냄

함께 읽은 책 : 《시민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 글,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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