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 소년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프랑스의 가난한 거리에서 은퇴한 매춘부 로자 아줌마가 맡아 기르는 모모의 이야기다. 로자 아줌마는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고 부모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자신을 버렸다. 이보다 나쁠 수 있을까.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 등 아프리카인들과 무슬림 출신들이 주로 거주하는 파리 변두리 빈민가인 방리유 지역. 이곳에는 매춘부와 버려진 아이들 외에도 노인, 이주노동자, 유태인, 아랍인, 성소수자 등 경계인들이 모여 사는,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지역이다.
힘든 현실 탓에 모모는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오랜 경험에서 비춰 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밀 할아버지와의 대화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도움을 주는 이웃들, 그리고 모모를 키우며 서로에게 의지했던 로자 아줌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모모는 불행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결핍을 인정함으로써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그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만큼 사랑을 줄 대상도 필요했던 모모가 아픈 아줌마와 부서진 우산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의 곁을 지켜 주고 떠나보낸 후 모모는 새로운 사람들과 조심스럽게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하밀 할아버지의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 또한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혼자서는 결코 깨닫지 못할 생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나의 자로 모든 것을 잴 수는 없지 않은가.
원제 ‘La Vie Devant Soi’는 앞으로 남은 생, 여생을 의미한다. 작가 로맹 가리가 낡은 작가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비평가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어 이름과 이력을 벗어버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모모의 관점에서 삶을 관조하고 싶었던 걸까? 《자기 앞의 생》을 쓰고 난 뒤 그의 여생은 어땠을까. 이 작품으로 그는 다시 명예를 회복했지만5년 뒤 이혼한 아내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