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선생님은 불문학을 전공한 번역가이자 평론가였다. 기욤 아폴리네르를 전공했고 시와 언어, 민주주의를 사랑했던 분이었다. 번역가로서 우리말을 아끼고 연구하였고, 번역을 독자와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평론을 통해 좋은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전작인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어른의 모습을 보고 존경의 마음이 들었고, 활발히 활동한다고 알려진 SNS 팔로우를 했다. 농담에 담긴 통찰과 이슈에 대한 의견을 보며 홀로 친분을 쌓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후속작은 그의 사후에 만나보게 되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읽으며 마지막 부탁의 의미와 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번역가 황현산
번역가로서 황현산의 진면목은 《어린 왕자》에서 발견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삶의 태도와 관계에 관한 ‘바이블’임을 새삼 느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막과 뱀의 의미를 알게 되기도 했다. 현대인들의 관계에는 여우와 같은 사랑도, 뱀과 같은 충격도 없으며 인터넷 세상은 '어떤 결단도 없이 이 세계 저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과 같다는 인식에 깊이 공감했다.
그는 번역이란 번역자만의 역량이 아닌, ‘두 언어를 둘러싼 문화의 발전과 독자들의 통찰에 의해 메워’진다고 말했다. 번역일을 하면서 그는 우리말을 더 사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외래어와 방언, 표준어의 관계와 상투어, 은어, 비속어, 줄임말을 즐겨 쓰는 시대를 고찰한 글이 많다. 그렇지만 세태를 꼬집고 비평하기에 앞서 배경을 살펴 진단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했다.
언어를 사랑한 사람
그는 언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어떤 언어로 표현된 생각은 그 언어의 질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세상을 바꾼다”고 할 만큼 언어와 문학이 사람과 삶에 큰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방언과 표준어의 변증법>에서는 방언의 의미가 잘못 알려진 사실을 강경하게 비판했다. 잘못 알려진 배경에 근대주의와 식민주의 사상이 녹아 문화 전반에 존재하며 사람들의 삶을 메마르게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청소년의 욕설과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는 온화함을 보인다. 무엇에도 시비를 걸 시기에 언어를 폭력으로 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한다. 의태어와 의성어의 남용을 게으른 태도라고 지적한 부분에서는 반성이 되었고, 적확한 말과 글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문학평론가이자 사회비평가
황현산은 문학평론가로서 좋은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영화를 본 후 의문이 남았던 <곡성>이나 <컨택트>에 대한 글도 흥미롭게 읽었고, 책에서 소개된 이육사의 <광야>를 읽으며 전에는 몰랐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탐구는 문학의 역할에 대한 오랜 의문을 더욱 자라나게 했다. 그에게 시는 ‘누릴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뛰어난 방식이자 그 희망을 가장 오랫동안 전달하는 수단’이며, 시인은 ‘모든 상처를 시로 바꾸는’ 사람이라고 정의된다.
표절이나 성추행 등 문단의 문제와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는 사회비평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온화한 문장과 단호한 태도로써 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행동으로 보였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은 반어적이어서 오히려 무게를 갖는다. 언어와 문학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삶에 희망을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서 결국에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 그렇기에 언어를 다듬고 문학을 계속하기를, 이것이 그가 당부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그의 자세에서 나는 문학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제 없지만 그의 온기를 담은 문장과 실천적 자세는 이 책 속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책 정보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글, 난다 펴냄
함께 읽은 책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글, 난다 펴냄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글, 황현산 번역, 열린책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