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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28. 2022

자유를 향한 환상, 평등을 위한 글쓰기

타네히시 코츠, 《워터 댄서》를 읽고


《워터 댄서》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노예 제도에 관한 논픽션과 마블 코믹스의 블랙 팬서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집필한 작가다. 그리고 작가의 아버지 윌리엄 코츠는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해 조직된 '블랙팬더' 당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민주인권포털 자료 참고)


이 책은 유럽계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하이람의 이야기, 노예 제도가 성행했던 미국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는 노예를 매매하고 학대했으며 '도망 노예 사냥꾼'이 있을 정도로 가혹한 억압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은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썼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노역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람은 남다른 기억력으로 아버지이자 주인의 눈에 들어 배다른 형의 비서가 된다. 종일 노역을 하며 굴속에서 지내는 이들과 달리 그는 좋은 옷을 입은 채 그저 남보다 덜 절망하며 살았다. 팔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실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이람은 자신 역시 자유가 없는 노역자라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의 짐은 현실을 망각하고
신화를 믿었기에 나온 것이었다.


하이람은 을 위기를 넘긴 계기로 노예 해방 조직에서 일하면서 자유를 경험하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엄마에 관해서만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던 현실이기에 망각을 택한 것이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 증오가 사라지면 자신의 고통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말한 제임스 볼드윈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받아들인 이후 하이람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이람의 삶이 빛나는 것은 누군가를 구원으로 인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런 경험을 통해 하이람은 역사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와 이야기가 지닌 힘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한 사람을 살게 하 집단을 움직이고 민족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워터 댄서》는 절망에서 희망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에서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들은 탁월한 서사적 매력을 넘어 역사와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로 연결되어 있다.


일본 소피아 대학교수 매튜 스트레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너무나 상세히 묘사되어서 현실적인 배경이 공격받는 것"으로 정의했다(나무위키에서 재인용). 마술적 사실주의는 억압 속에서 발현한다. 이는 아름다운 신화와 절망적인 현실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도약은 이야기의 힘을 통해 이루어진답니다.


무참했던 시절을 표현해야 했기에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타네히시 코츠는 인간의 존엄과 이야기가 전달하는 힘에 대해 이토록 환상적인 글로 전하고 있다. 그의 믿음과 의지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궤적은 또 다른 누군가를 그가 간절히 바라는 곳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책 정보 : 《워터 댄서》 타네히시 코츠 글, 다산책방 펴냄


함께 읽은 책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글, 왕은철 번역, 현대문학 펴냄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슈디 글, 김진준 번역,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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