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를 통해 에릭 호퍼를 알게 되었다. 그는 평생을 거리에서 일하며 몸으로 사회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왔다. 사회가 격변하고 인간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하게 된 20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과 거리라는 공간적 배경이 그의 삶을 사색과 철학으로 이끌었을까? 그의 아포리즘을 모은 《인간의 조건》에 담긴, 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성찰을 만나본다.
완전한 개미, 완전한 꿀벌은 있지만 인간은 영원히 미완성이다. (…)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점도 이런 치유할 수 없는 불완전함이다.
그는 인간을 자연이 빚은 실수라고 표현했다. 타고난 불완전함을 극복하고자 인간은 기계성을 동경하며 완전함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창조성이 발현되기도 했으나 결국 자연과 대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타고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하며 비정한 자연성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그는 또한 완전함을 향해 인간이 행하는 노력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완전한 인간이란 곧 비인간적인 것과 다름 아니라 했다. 그의 말에 장인과 공장을 떠올렸다. 완전함을 향해 오랜 시간을 두고 나아가며 작업물에 혼을 담는 이들을 우리는 장인 또는 예술가라 부른다. 반면 반복되는 똑같은 업무에서 한 치의 오차나 흠도 허용되지 않는 공장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호퍼는 ‘인간적인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모색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신이나 기계는 망설이지 않는다.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판단을 내리고 실행으로 옮기기까지의 주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 동안 인간은 정보의 조각을 모으고 가늠하고 상상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여 나름의 결정을 내린다.완벽한 존재에게는 필요치 않을 이 시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 준다고 호퍼는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황하고 머뭇대며실수하고 넘어져서되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미’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감춰둔 나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발견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겨우 한 고비 넘은 이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한없이 약한 인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대해지는 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