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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Sep 28. 2022

의연했던 숙명과 무거웠을 사명

김훈, 《하얼빈》을 읽고


안중근이라는 이름 뒤에는 정의를 위해 의로운 일을 도모한 사람이나 일을 이르는 ‘의사’와 ‘의거’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민족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삶과 죽음이 대의로 가득했다면 비범함을 타고난 이의 자연스러운 귀결에 뻔한 찬사가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훈 작가가 더듬어간 것은 차분하고 의연하면서도 불안을 지닌, 말수 적은 청년의 짧은 생이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마음을 깊이 저미게 했다.


작가는 안중근의 삶에 이끌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도 한참의 세월을 보내고,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픈 뒤에야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에 떠밀려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독립투사라는 명성과 역사적인 증거들과 그 살린 수많은 후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을지, 나라 잃은 청년의 숙명만큼이나 그 기억하고자 하는 소설가의 사명에 숙연해진다.


안중근의 아들 분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아이는 아직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아이의 앎은 혼자만 아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안중근에 대입해 보면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안중근의 내면 또한 혼자만 아는 것일 테다. 그러나 안중근의 삶과 죽음은 민족의 운명과도 같기에, 이 소설은 알 수 없는 그 길을 따라가 보려고 부단히 애쓴 흔적으로 읽힌다.



소설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시점이 동시에 전개된다. 안중근을 영웅화하지 않는 것처럼 이토를 악마화하지 않은 채 관찰자적인 시점에서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고고한 문장과 간결한 문체, 철저한 고증에 따라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역사의 한 자락을 들춰 보이며 독자가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할 뿐이다.


대륙에 쌓여가는 피 흘리는 시체들과 너무 고요해서 눈 쌓이는 소리마저 들린다는 메이지 황궁. 작가는 이 두 상황을 나란히 배치하여 대비시킴으로써 일본의 야만적인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재판에서 미조부치가 안중근과 우덕순을 지식이 결핍된 부랑아요 미치광이로 치부하기 위해 건조하고 반듯한 언어로 논고했듯이 김훈 작가 또한 정갈한 소설의 문체로써 일본의 후안무치를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과 우덕순이 직업으로 증언했던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가 가진 힘에 이끌려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필부들에게마저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숙명을 씌운 것은 제국주의와 산업화의 욕망이었다. 이 두 욕망은 쇠로 만든 기찻길과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로 실현되고 있었는데 ‘신호로 명멸하는 빛의 힘’을 아름답게 여겼던 이토는 기차의 도착 신호에 의해 죽는 역설에 갇히게 되었다.



메이지가 조선의 황태자 이은에게 선물한 시계와 조선 곳곳에 설치된 벽시계도 조선을 문명화하려는 구원자로서의 일본을 상징한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문명화와 구원은 재앙이다. 이 일방적인 구원의 죄악에 선교 활동도 자유롭지는 못하다. 소설에는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라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을 묘사하면서, 또 한 번은 종교 박해를 설명하면서다.


서양인 신부들은 조선 땅에서 지난 백여 년 동안 벌어진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거룩하고 또 두렵게 여겼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고서는 그처럼 치열하고 순수하게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면서 신앙을 증거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이 낙후된 나라에 쏟아진 축복이었다.


박해와 순교로 죽어간 이들이 신앙을 증거한다고, 이것이야말로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쪽의 입장인 것일까? 그것은 오직 살아남은 자들의 입장일 것이다. 빌렘 신부는 안중근의 멘토와 같은 역할로 등장하지만, 안중근이 세속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신의 품 안에서 안주하길 바랐으며 죽기 직전 마지막 고해성사에서도 살인을 한 죄를 말하기를 기다렸다. 빌렘은 ‘영혼을 구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노라고 말했지만, 안중근은 그 반대의 순서가 아니면 안 되었을 것이었다.



안중근은 자신이 조선의 독립전쟁을 위해 싸우는 의병이자 포로이지 자객이 아님을 주장했다. 이토를 죽인 까닭으로는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며, 그 이유는 일본의 무력 협박과 늑약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라 했다. 그 기세를 꺾고 위엄을 세우기 위해 일본인 변호인이 일본을 의붓어머니에, 안중근을 생모를 그리워하는 자식에 빗대며 그의 무지와 오해를 선처할 것을 요청하는 대목에서는 못 견디게 가증스러웠다.


안중근의 사형 예정일이 순종의 생일이어서 하루 연기되었으며, 그가 죽은 다음 날은 부활절이었다는 것이 허망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은 드높은 신분의 허수아비 황제도, 사랑을 전파하고 영혼을 깨운다는 종교도 아니었다. 일인들이 대륙으로 뻗어나가고자 했던 길은, 그들의 정의에 따르면 무지렁이 촌부에 의해 저지되었다. 안중근과 우덕순뿐 아니라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아내 김아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의병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들은 귀한 목숨을 내놓고 끝끝내 나라를, 그리고 속인들의 평범하기에 축복된 삶을 되찾았다.




책 정보 : 《하얼빈》 김훈 글, 문학동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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