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돌연 벌레로 변해버린 한 인물의 죽음을 조명하며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다룬 이 유명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무엇이 카프카를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정점에 이르게 했는지 새삼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읽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치고 그 언저리에서 오래 서성였다.
그들은 문을 열어둔 채 그대로 나간 모양이었다. 굉장히 불행한 일이 일어난 집에서 종종 그렇듯이.
소설 속 인물들이 맞닥뜨린 굉장한 불행의 본질은 무엇일까. 먼저 그레고르의 정서를 따라가 보자.흉측한 모양새나 가눌수 없는 몸보다 그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지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급기야 걱정했던 대로 회사에서 매니저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잠깐의 어긋남이나 부재도 허용되지 않고 의심과 감시를 받는 시스템 속에서 그는 일하고 있었다.
그는 늘 잠이 부족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행을 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을 택한 자신이 한스럽다. 부모님이 사장에게 진 빚이 아니었으면 오래 전에 사표를 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사측 의사는 일하기 싫은 직원의 핑계로 치부할 것이기에 아플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가족 중 누구도 벌이가 없어서 힘든 직장일을 버텨야 했던 그였다.
활짝 열린 현관문은 철물공을 불러 굳게 잠긴 그의 방문을 열기 위해 나간 동생과 하녀가 미처 닫지 못한 것이었다. 그 소동을 듣고 그레고르는 용기를 내 문을 열지만, 흉측한 모습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레고르를 다시 방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이제 그는 다시 닫힌 방에서 밖의 눈치를 살피며 고뇌에 빠지는데, 이러한 여가 시간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제 어떻게 새롭게 재단해야 하는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골똘히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생긴 것이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고서야 겨우 주어진 여가 시간에 그가 생각한 것은 가족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 주었다는 뿌듯함과 동생을 음악학교에 진학시켜주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더불어 그가 기억하는 멋진 순간이란 현금으로 받은 급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때 가족들이 좋아했던 모습이었다.이처럼 그의 삶에는 스스로에 대한 기억도 스스로를 위한 계획도 없었다.
그레고르와 가족들에게 닥친 불행의 본질은 경제적인 위기였다. 그간홀로 감당했던 돈벌이의 의무를 그레고르가 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들은 그제서야 세입자를 들이고 일거리를 찾으며살 길을 마련하고자 한다.늘 기운 없는 노인이었던 아버지는 일을 구한 뒤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를 취하며 그레고르를 위협한다.
아직은 내가 여기 버젓이 있고, 또 가족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걱정을 놓지 않는 그레고르와는 달리 가족들은 그를 혐오하며 어떻게 치워버려야 할지 고민할뿐이었다. 벌레가 된 뒤에도 그는가족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그들은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그레고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아무 음식이나 밀어넣고 그의 방을 마음대로 정리해버렸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몸에 박혀 썩어가고, 그를 볼 때마다 놀라 기절하는 어머니와 제발 사라져달라는 동생의 본심을 알게 된 후, 결국 그는말라 죽어버린 채 가정부의 손에 정리된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불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가정부마저 내보낼 결심을 한다. 그런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래를 계획하며 한층 돈독해진 가족들의 모습은 씁쓸함만을 남긴다.
그레고르의 소외와 소멸은 소모품처럼 활용되다가 몸이 망가지거나 나이가 들면 쉽게 버려지고 대체되는, 노동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가족과의 유대마저 잃어버린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다.더불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기대와 억압 속에서 살았던 카프카 자신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 자아를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경제 성장과 안락한 생활 유지를 위한 돈벌이로 전락해버린 현대인의 소외는 깊고 외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