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랍 세계의 문화를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각인시킨 이야기들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로 전해지는 〈알라딘과 요술 램프〉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그리고 〈신밧드의 모험〉이다. 어렸을 때 디즈니 세계명작동화를 통해 접한 이 이야기들은 온갖 험난한 모험을 통해 보물을 획득한다는 서사에 이국적인 배경이 더해져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보다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신나는 모험의 대명사였던 이야기의 제목을 품은 《나와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동화책을 만났다. 내 기억 속 신밧드는 어린 소년의 얼굴을 하고 머리에는 터번을 둥글게 두르고,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둘레가 커지는 바지를 입고 작은 반달칼을 들고서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책 앞표지 그림에 호기심 가득한 소년은 없다. 그저 낡은 배 한 척의 어두운 선실에 따로따로 그려진 눈코입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낼 뿐. 공포 버전의 모험 이야기 같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신밧드의 모험》 책과 소년의 방을 그린 그림이다. 특이한 것은 이 그림들이 연극무대 위 장치처럼 그려졌다는 것이다. 소년이 원하는 환상적인 모험은 이루어지기 힘든 상상이어서일까?(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어 소년의 가족들이 소개되고, 주인공 소년은 아버지에게 일곱 번이나 모험을 떠난 신밧드가 부럽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핀잔을 줄 뿐이다.
아빠가 그러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폭격이 떨어져서 집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부모님과 소년만 염소 세 마리와 함께 서둘러 길을 떠난다. 소년은 신밧드가 그랬던 것처럼 첫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 속 이야기와 달리 난민촌을 지나 베를린에 있는 형에게 가려던 가족은 돈이 부족해서 소년 혼자만 버스에 태워 떠나보내기로 한다.
혼자가 된 소년에게 남은 것은 이야기뿐이었다. 소년은 신밧드가 되어 버스가 아닌 배를 타고 넓은 바다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자 창 밖 사막에 다시 고래 꼬리와 파도와 달과 별 이 등장한다.소년에게 신밧드의 이야기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 외로움과 슬픔의 무게를 어린 소년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소년은 처지가 비슷한 소녀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신밧드라고 소개하고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며칠을 달려서 도착한 국경 근처에서 돈이 없는 소년은 다시 홀로 남겨지는데, 신밧드라면 또 다른 모험을 찾아 떠났을 것이라 생각하며 소년은 홀로 산을 넘는다.이렇게 ‘내가 신밧드라면’이라는 주문은 소년을 매번 용기로 이끈다.
신밧드의 이야기와는 달리 소년과 소녀가 겪은 모험의 끝에는 보물 대신 아동 착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돈도 받지 못하고 일만 하던 소년과 소녀는 공장에서 탈출해서 다시 배를 타지만 선장 역시 돈만 받은 뒤 아이들을 내팽개친다. 목숨을 잃을뻔한 위기를 넘기고도 소년의 고행스러운 모험은 끝날줄을 모른다.
난민 소년의 삶을 바라보며 그 옛날 신비롭던 이야기는 하나둘씩 화려한 옷을벗고, 대답을 알 수 없는 물음만이 꼬리를 문다. 신밧드가 태어난 그 장소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밧드를 동경하던 소년 소녀들은 어디에 당도했을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떤 시선과 정책일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읽어야 할 신밧드는 어느 쪽일까.
책 정보 : 《나와 신밧드의 모험》 제냐 칼로헤로풀르 · 마이크 케니 글, 바실리스 셀리마스 그림, 길상효 옮김, 씨드북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