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Sep 15. 2022

왼손잡이들의 좁은 세계

《지미 헨드릭스: 록스타의 삶》을 읽고


얼마 전 라디오를 듣다가 8월 13일이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은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편견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고 왼손잡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라고 한다. 세계 인구의 약 10% 정도가 왼손잡이 세상은 90%의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오른손잡이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미닫이 문은 오른쪽으로 열게 되어 있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대중교통 개찰구도 대개 오른쪽에 위치한다. 글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야 하고, 그래서 분필로 칠판 글씨를 쓸 때면 왼손잡이는 분필가루가 손에 더 잘 묻게 된다. 왼손잡이 동료는 밥을 먹을 때 팔꿈치끼리 부딪히기 때문에 오른손잡이의 오른쪽에는 앉지 않으려고 주의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들이 아무 자리에나 앉으니 간혹 혼자 우왕좌왕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왼손으로 가위질을 해 보면 얼마나 헛손질을 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왼손용 가위가 나오기까지 힘들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불편보다 힘든 건 편견일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밥 먹는 손 오른손, 글 쓰는 손 오른손’이라는 문구를 앞세운 어른들에게 철저하게 오른손 사용을 교육받았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왼손잡이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른'은 아마도 '옮음'을 의미할 것이고 영어 단어도 right는 ‘옮음, 정의’를, left는 ‘약함’을 의미한다. 왼손은 부정한 손이어서 화장실에 갈 때만 이용하도록 한 종교의 규범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기타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께 여쭤 보니 지금은 왼손잡이용 기타가 나온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기타를 분해해서 줄을 거꾸로 끼워야 했단다.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의 삶이 궁금해져 그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찾아 읽었다. 


지미 헨드릭스짧았던 삶은 가난과 편견과 강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미의 아버지는 악마의 상징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어서 왼손으로 기타를 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아버지가 볼 때마다 오른손으로 연주했던 덕분에 그는 자유롭게 양손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은 자유가 아닌 억압일 뿐이었다.



스타가 된 뒤 공연을 다니면서도 자유롭게 식사하거나 숙박할 수 없었다. 그의 공연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그가 식사를 하고 숙박을 하려고 할 때면 다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피부색의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본 보디가드들은 총구를 그에게 겨누기도 했다. 왼손잡이에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이었던 그는 평생을 차별에 맞서야 했다.


그들은 때때로 공연장으로부터 80km나 떨어진 흑인 소유 호텔에서 잠을 잤고, 주방의 밀가루 포대 위에 앉은 채로 음식을 먹었다.
지미는 몇 시간을 들여 그 기타의 프렛을 깎아 다듬었다. 그 기타는 원래 오른손잡이용 기타였다. 하지만 그는 줄을 다시 달고 악기를 재조립해 그것을 왼손잡이용 기타로 개조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에릭 클렙튼과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는 극과 극이었다. 어떤 기교도 없이 감미롭게 연주했던 에릭과는 달리 지미를 유명하게 만든 퍼포먼스는 상당히 과격다. 기타를 이빨로 뜯고 등 뒤나 다리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연주했으며, 무대 위에서 기타를 부수거나 불태우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퍼포먼스에는 억압과 강박이 작용했던 것이리라.


기타 부수는 것은 가장 큰 찬사가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분노와 좌절로 보냈던 시간을 일소해버리려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자신의 기타 갖기를 소망하던 그 소년은 이제 무대 위에서 기타를 부수고 있었다.


right와 left라는 단어가 가진 함의처럼 백과 흑,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말 자체에도 칼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다수자의 편의와 편견이 소수자에게 어떤 위협과 상처를 주고 또 배제하고 있는지 알아채기조차 어려우므로, 조금 더 자세히 살피고 귀를 기울여본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건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낸 사람이나 위대한 지도자만은 아니다. 나의 편견을 돌아보는 일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이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책 정보 : 《지미 헨드릭스: 록스타의 삶》 찰스 R. 크로스 지음, 이경준 옮김, 1984 펴냄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을 널고 기억을 말리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