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로 알려진 《그레이스》는 캐나다에서 유명했던 고용주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실화이자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이토록 긴 소설로 다시 쓰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마가렛 애트우드는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 판단이 서지 않아 부커 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눈먼 암살자》를 함께 읽었다. 그의 이야기가 매혹적이라는 확신과 시대의 인권 의식에 따른 여성의 험난한 삶을 조명하는 데 노력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대중과 기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례적이면서 석연치 않은 사건에 사람들은 관심이 많고, 그런 이들의 호기심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확대 해석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애트우드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고수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를 통해 사실과 진실의 경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럼으로써 판단의 열쇠를 자신의 손에서 독자에게로 넘긴다.
애트우드는 한 인물에 대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부모의 삶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소설에는 지난한 이야기들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힘은 소설의 형식을 통해서 발현되는데, 결말을 먼저 드러내는 역순행적 구조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담은 액자식 구성, 각각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주는 옴니버스식 구성 등이 복합적으로 활용된다. 보도자료나 출판물, 서신을 인용하는 방식도 중요한 요소다.
《그레이스》에서는 인물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의사 사이먼이 맡고 있다. 두 인물이 나눈 이야기의 핵심 부분이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고,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시가 이어진 뒤에 비로소 인물들이 등장한다. 화자인 그레이스의 현재와 사이먼에게 들려주는 그레이스의 과거, 그리고 사이먼이 곤란에 빠지게 되는 세 갈래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되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눈먼 암살자》에서도 이어진다.
당시에는 책에 인용된 수재너 무디가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무디의 글에서 그레이스는 섬뜩하게 아름답고 사악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무디는 인기라는 권위를 가졌기에 그가 기술한 내용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들처럼 그레이스에게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악랄한 살인범 아니면 억울한 희생자라는,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 안에서 그의 언어를 해석하고 재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트우드는 다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 그는 작품 속 여성들의 서사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사회 문제를 꼬집는다. 위키피디아에 인용된 논문에 따르면 《그레이스》의 배경이 된 시대는 중산층의 증가로 하인의 수요가 많아졌고, 주로 이주한 아일랜드 여성들이 가사 노동자로 일했던 시기였다. 여성 인권 개념이 정립되며 해방 운동이 시작되던 시기지만 당시 대부분의 여성, 특히 하층민 여성의 삶은 고난과 위협의 연속이었다.
애트우드가 서술한 그레이스의 삶은 치정이 부각되지도 않고, 살인 사건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레이스가 악녀인지 요부인지 혹은 희생양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녀로 일했고, 유일한 친구를 고용주의 성폭력과 무책임으로 잃었고, 살인범이 되어 재소자들과 의사와 호 송인들에게 모욕과 희롱을 당해 왔다. 매력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 그의 주변에는 자신의 욕망을 여성의 죄로 덮어 씌우려는 맥더모프나 배널링 같은 남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살인범이 되지 않았더라면 친구인 메리 휘트니와 같은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먼 암살자》의 중심 인물도 몰락한 집안을 살리기 위해 정략결혼을 한 뒤 남편과 그 집안의 권력에 삶이 짓눌리고, 동생마저 그루밍을 당하고 자살한다. 마가렛 애트우드는 이 외에도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와 사회 인식이 여성들의 생애를 장악하려 하지만 애트우드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좌절하거나 머물지 않고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사이먼은 서툴렀고 이렇다 할 마무리를 짓지도 못했지만 진실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사이먼이 그레이스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그레이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저 ‘들어주기’였다. 들어주는 행위, 즉 공감은 오늘날 심리 치료에서 널리 활용될 만큼 큰 힘이 있다. 이에 그레이스는 의사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너무 익어서 저절로 갈라지는 복숭아’처럼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사이먼의 태도는 애트우드가 소설을 쓰는 이유와 방식 그 자체다. 그는 인물들이 겪어낸 과정을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을 위로한다. 《눈먼 암살자》에서 애트우드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인물의 야망을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써내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화자의 입을 빌려 ‘나는 오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기록한다’고 말한다. 그의 소설 쓰기 역시 애도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의 글을 읽으며 발화와 경청, 글쓰기라는 소박한 행위가 타자와의 공감을 넘어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책 정보 : 《그레이스》 마가렛 애트우드 글, 이은선 번역, 민음사 펴냄
함께 읽은 책 : 《눈먼 암살자 1 · 2》 글, 마가렛 애트우드 글, 차은정 번역, 민음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