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작가의 소설 속에는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죽은 자로 하여금》에서 전자는 이석이고, 후자는 무주다. 《재와 빨강》이나 《홀》에서는 전자와 후자가 동일 인물이며, 《소년이로》의 여러 단편에서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누구의 탓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사건과 사고 때문에 절망을 경험하는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장애를 얻거나 정서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단절당한 상태가 된다. ‘이석’이나 ‘효’와 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며, 그 곁에는 가해자라고 하기에는 억울 하달 수 있는 ‘무주’와 같은 인물이 있다.
조선업이 몰락한 시에서 권력과 자본은 사람의 생명으로 이윤을 만드는 병원에 집중된다. 병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삶의 가치를 깨닫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병원 사람들은 ‘이석’이 그러하듯 감정이 메마른 상태이거나, ‘효’처럼 저항하다가 결국 돈에 굴복하거나, 무주처럼 소외되다가 가혹한 사람이 되어간다.
무주는 전 직장에서 비리를 저질렀던 인물로 퇴직으로 자신의 잘못을 책임졌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그가 동료의 비리를 밝히는 것을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기지만, 남들이 보기에 그는 오히려 이중적이며 비윤리적인 사람이다. 아내의 임신을 통해 윤리적 가치의 변화를 겪은 후의 선택이었지만, 타인은 무주 내면의 변화를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무주는 직장 따돌림과 아내의 부재로 자신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무주는 악의로 가득 찬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이 피폐해진 이유는 한 번의 잘못된 선택에 불운이 겹쳐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선택을 계속해 온 결과다.
《죽은 자로 하여금》은 무엇이 윤리인지를 묻는 이야기는 아니다. 윤리의 정의를 합의할 수는 없다. 각자의 삶만큼이나 그 기준은 다양하고 복잡하므로.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스스로 돌아볼 수는 있다. 그 기준이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의 잣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의 잘못과 불행 앞에서 과연 우리는 결백한지 질문을 던진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도 인생의 법칙과 윤리의 부재에 따른 충격을 경험했다. 줄리언 반스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건드렸다면 편혜영 작가는 권력의 싸움에 희생되는 개인을 조명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해서 보여준다. 한 개인의 윤리 문제가 미치는 파장이 도미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마태복음 8장 22절을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발견하고 각각의 소설에 인용된 의미를 고민해 보았는데, 성경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태복음 7장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라는 구절에 이르러 이 소설과의 연결점이 보였다.
무주는 아내와 동료들에게 산 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 '죽은 자'와 다름없었고, 권력을 가진 이는 무주로 하여금 '죽은 자' 이석을 처리하게 했던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무주는 그가 비윤리적이라고 여겼던 이와 다름없는 '죽은 자'였다. 죽은 자와 산 자는 어떻게 달라야 할 것인가,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자와 같을 수는 없지 않냐고 이 소설은 묻는 듯하다.
책 정보 : 《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글, 현대문학 펴냄
함께 읽은 책 :
《홀》 편혜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년이로》 편혜영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재와 빨강》 편혜영 글, 창비 펴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글, 최세희 번역, 다산책방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