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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02. 2023

모두를 위해 빵을 만드는 성심당

성심당이 유명해진 이유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다가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어제, 고향에 간 김에 아주 오랜만에 성심당에 들렀었는데. 긴 대기줄에 놀라고, 맛있어 보이는 빵이 많아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또 놀라고 왔는데. 이 책은 자주 다니던 도서관 그 자리에 늘 꽂혀 있었을 텐데. 관심이 시야를 확장시킨 걸까? 아니면 이런 게 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일까?



성심당은 전의 유명한 빵집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역사가 오래된 향토 기업이고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 왔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았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다. 성심당은 이제 빵지순례를 갈 만큼 유명한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가 되었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다니 내심 뭉클하다. 한아름 사 온 빵을 아침으로 먹고 나서 책을 읽다가 여러 번 목이 메었다.


지은이 김태훈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 문화정책 분야에서 일해오면서 지역 문화와 더불어 성장하는 로컬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성심당의 기업 문화와 지역 상생 정책을 면밀히 조사하고, 대전 지역의 문화적인 역사까지 두루 살펴 책을 펴냈다. 그는 성심당을 한 마디로 '사회 프로젝트'라고 정의한다. 이 기업의 무엇이 '모두를 위한 경제 모델'이라고까지 칭하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성심당'은 임길순 창업주가 대흥동성당 신부님께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대전역에서 1956년에 노점을 시작하며 간판에 쓴 가게명이었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의미를 내걸고 장사 시작 첫날부터 역 주변 노숙인들에게 빵을 나눠 주었단다. 그 역시 6.25 전쟁을 겪으며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먹는장사를 시작한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장사를 하고 남은 음식을 나눈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나눔을 하기 위해 장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그의 큰 뜻을 짐작게 했다. 배움이 부족한 어린 직원들의 부모님을 만나 공부와 일을 병행하도록 설득하고 학비를 댔다는 일도 그러했다. 대전역 앞에서 허허벌판이던 대흥동으로 가게를 옮긴 이유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일하기 위해서였다는 일화 또한 울림이 컸다.



창업주의 뒤를 아들 임영진이 물려받은 뒤, 성심당은 기회와 위기를 여러 차례 맞는다.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으로 부흥을 누고 신메뉴 개발과 기발한 마케팅으로 승승장했다. 단팥빵과 소보로, 도넛 일색이던 1980년대에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튀김소보로를 만들어 인기몰이를 다. 먹거리에 대한 사회 불신이 극심할 때는 오픈 주방 전략으로 신뢰를 얻었고, 대기 손님이 많아지자 은행보다 먼저 대기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 김미진은 마케팅 개념이 없던 시절부터 따뜻한 조명과 인테리어를 도입하고 합격찹쌀떡, 밸런타인데이 카드 이벤트 등을 도맡아 성공시켰다.


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제빵기술자 다섯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거나 민주화 시위 당시에 시위대와 전경에게 빵을 나눠줬다가 경찰에게 취조를 받기도 했다. 동생의 별도 프랜차이즈 사업 실패로 도산 위기를 맞았으며, 대전 구도심의 몰락과 대기업의 프랜차이즈의 공격적인 운이 겹쳐지며 빚더미에 앉기도 했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은행동 153번지 자리를 지켜온 성심당에 2005년 화재가 나면서 비가 불타고 직원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자, 임영진과 가족들은 성심당의 마지막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심당을 살려 보겠다고 의기투합하여 6일 만에 매장을 정리하고 작게나마 다시 가게를 연 것이다. 뉴스로 화재 소식을 접하고 재건을 지켜본 대전 시민들이 찾아와 빵을 사며 이들을 격려한 덕에 이전보다 30%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 일로 성심당은 직원과의 끈끈한 유대는 물론이고, 회사라는 울타리 너머의 대전 시민들에게도 가족애와 마음의 빚을 느꼈다고 했다.


이야기를 가진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가 일치를 만들고 협동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이야기는 ‘우리, 공동체’를 확인시켜 주고 협동의 이유를 찾아 준다.

- 김태훈,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25p


임영진, 김미진 부부는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성심당만의 존재 이유와 초심을 찾기로 한다. 빵 크기를 키우고,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넉넉한 시식을 제공하는 등 '엄마 같은 존재'가 되고 마음먹는다.  그러 경제 불평등과 사회 문제 기업인들이 해결하자는 가톨릭 운동인 '포콜라레'를 만난다. 종교를 초월하여 '모두를 위한 경제'를 추구하는 실천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먼저 성심당을 법인으로 전환하고 성실한 세금 납세를 기본 원칙으로 삼다. 세금이야말로 공공복지에 투자되는 기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성심당은 국세청이 수여한 '아름다운 납세자상' 1호가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회사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 15%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이 금액의 20%를 세계의 이웃들을 위해 프로젝트 기금으로 납부한다니 과연 사회 공헌을 실천하는 기업답다.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성심당은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의 저 말을 모토로 삼고 고객과 지역 주민까지 고려하여 대전 인근 지역의 친환경 영농 식재료로 빵을 만든다. 포장재도 가능한 친환경적으로 바꾸었다. 만든 지 4시간이 지난 빵은 팔지 않고 매월 3천만 원 이상의 빵을 기부하고 있다.


성심당에서 빵을 사려고 대기줄을 설 때 건물 외부에 수도꼭지가 있는 걸 보았다. 그 수도꼭지가 주변 포장마차 상인들에게 무료로 물을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었다니. 성심당은 단순히 튀김소보로나 부추빵이 맛있어서 유명해진 빵집이 아니었다. 위기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버틴 일화들을 통해 신화적이자 신뢰받는 기업이 된 것이었다.



대전시와 대전 롯데백화점의 간곡한 요청으로 성심당은  대전역과 백화점에 분점을 내고 성공시켰다. 이는 KTX 역사와 롯데백화점에 유명 프랜차이즈 대신 지역 맛집을 유치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성심당은 여전히 타 지역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있다. 대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대전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고, 이로써 대전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김미진 대표는 이런 말로 그 뜻을 밝혔다.


대전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성심당을 소개하고, 빵을 선물하며 역사를 지닌 로컬 기업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대전에 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을 그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대표의 말처럼 이제 대전이 성심당이고, 성심당이 대전이어서일까? 기업 이야기를 읽으며 이렇게 여러 번 울컥할 줄이야. 성심당이 겪어온 이야기들, 갈등과 위기를 넘어 성장한 이야기도 감동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위대함과 행동으로 보이는 진실함이 마음을 울린다. 저자 김태훈은 이를 '정직한 노동'에서 배어 나오는 소통이라고 보았다. 성심당의 '정직한 노동'을 알지 못할 때도 좋아했는데 알고 니니 이 기업을 진정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로 그 응원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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