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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16. 2023

농담을 환영하는 사람


그리스 산간 지방 사람들이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새로운 농담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에 인용된 영국의 방랑학자 패트릭 리 퍼머의 문장을 오래 간직해 왔다. 마음에 품었던 ‘환대’와 ‘농담’이라는 단어가 반가웠고, 정감 넘치는 그리스인들의 풍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농담도 좋은데, 새로운 농담이라니 얼마나 설레는지! 반짝이는 눈과 쫑긋 세운 귀를 준비한 뒤 잘 듣고 배워야 하고 말고.




커트 보니것은 인터뷰에서 “농담은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농담은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는 뜻이고 반대말은 ‘진담’이다. 그렇지만 진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농담은 가치를 잃는다. 또 농담 속에는 통찰과 해학, 기발함이 압축되어 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기반으로 공감되는 감정을 건드려 웃음을 유발하는, 결코 쉽지 않은 화법이기에 과연 농담은 말로 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농담의 전제는 정립된 관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의 섣부른 농담은 무례해지기 쉽다. 상대의 상황을 모른다면 어떤 말에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비교를 통해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농담도 안된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웃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농담 아닌 조롱이고, 웃음은커녕 고통을 유발하게 되니까. 이런 이유로 스스로를 농담의 소재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는 가장 안전한 농담을 구사하는 사람이다.




갈등을 못 견뎌하고 회피하는 성향이어서일까? 유독 날선 말, 거친 말, 짜증 섞인 말에 민감하다. 그런 말들에 마음을 다치거나 닫혀 버리기도 한다. 반면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해도 내재된 흥이 많아서일까? 장난, 익살, 드립, 유머, 위트… 이 모두를 좋아하고 환영한다. 이들이 낳은 웃음은 사람들 사이의 서먹함을 친근함으로 치환하고, 거리감을 바짝 좁혀준다.



어릴 때부터 지금껏 놀림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나는 바닥에 깔린 미생물 플랑크톤을 담당하고 있다. 일례로 지인들이 내 말투를 따라 하는 일은 중고생 때부터 직장인인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이점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유는 몰라도 그 놀림들 속에 악의 아닌 호의가 들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그건 괴롭힘이 아닌 유희다.


'역치의 한계가 없다’는 말도 들어봤고, 요즘 말로는 ‘타격감’이 좋단다. 처음 들었을 때는 굴욕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능숙하고 의연하게 농담을 쳐내지 않고 꿀꺽 삼키고는 부르르 약 올라하고, 깜짝깜짝 잘 놀라기도 하고, 쉽사리 부끄러워져 불그스레 달아오르는 걸 보는 재미가 있나 보다. 또는 만만치 않게 되받아쳐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티키타카로 웃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쿠크다스처럼 바사삭 부서지는 멘탈이다. 다행히 또 금세 회복하는 탄력성도 갖고 있다. 실없어도 좋고 철이 없다 해도 좋다. 칭찬을 받으면 온몸이 간지럽고 말이 막혀버린다. 하지만 말랑젤리 같은 농담이 두드린다면 말문을 활짝 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내게는 칭찬보다는 농담을 건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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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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