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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30. 2022

쉼보르스카의 시를 닮은 아름다운 유언

《충분하다》를 읽고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에 화해를 청합니다.


유언으로 남겼다는  문장에 매혹되어 비스와바(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충분하다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유작에 '충분하다'라는 제목을 지어 두었다고 한다. 시집 《끝과 시작》에 수록된 시 〈거대한 숫자〉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헤아리지 못해 괴로워하면서 ‘단 한순간도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말한 그였는데. 어떤 삶이어야 죽음을 앞두고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를 통해 만난 그 고정관념과 인본주의를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자연에 대해, 미물에 대해, 희생자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으로 시를 썼다. 구름, 기차역, 모래 알갱이까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순간의 존재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대상화, 획일화하는 잘못된 습관을 깨뜨리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거듭했다.


“너무 많다고 말하는 건, 충분한 표현이 아니다〈마이크로코스모스〉", “천 명에다 한 명이 더 죽어도, 여전히 천 명이라고 말한다. 그 한 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야스오의 강제 기아 수용소〉, 《끝과 시작》)”에서 보듯 여러 편의 시에서 집단화의 폭력성을 강하게 지적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죽음을 다룬 시에 더 눈길이 갔다. 〈십대 소녀〉와 〈기억과 공존하기엔 힘겨운 삶〉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내 고인(故人)들로 우글거리는, 쓸모없는 타령”이라며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한다. 〈강요〉에서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의 불가피한 섭리를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訃告)”라는 시어로 짚어낸다. 서정을 노래하는 시인들도 어쩔 수 없음을 슬퍼하고 식탁에서의 사유 없음을 꼬집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 쉼보르스카,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중에서


쉼보르스카는 세상을 두루 살피며 사유를 거듭했고, 어렵고 멋진 말 대신 위트와 풍자를 담아 시를 썼으며 일상의 대화처럼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삶이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이라면 그 여정은 시인의 말처럼 자기 자신과 또 세상과 화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청해야’ 한다.


백석과 황현산, 심보선 등 여러 시인과 문인들은 '모든 문학은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은 '상실을 마주하면서, 상실로 인한 서러움 안에서도 희망을 그려 보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는 나도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거나 재산 분배인 삶은 너무 슬플 테니. 유언을 남기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시에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책 정보 :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글, 최성은 번역, 문학과지성사 펴냄

함께 읽은 책 : 《끝과 시작》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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