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Mar 31. 2022

그저, 무사한 나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황정은, 《연년세세》를 읽고


《연년세세》는 부모 없이 자란 한 여성과 두 딸들의 삶을 조명하는 황정은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2019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짙은 인상을 남겼던 <파묘>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연작으로 다시 읽으며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를 더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이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족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성과 이름을 붙여 꼬박꼬박 기술했는데, 이는 합치될 수 없는 독립적인 인물들을 드러내는 듯했다.




<파묘>는 이순일이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외조부의 묘를 정리하며 일어난 이야기이다. 이순일은 마지막 성묘를 위해 마음을 쓰지만, 미처 절을 올리기도 전에 인부들은 땅을 파헤치고 뼛조각을 태운다. 처가 산소에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잡소리’를 했던 남편이나 자신의 등산화를 잃어버렸다고 타박하는 큰딸 한영진과 달리 둘째 딸 한세진만은 그곳이 엄마에겐 유일한 친정이라는 생각에 성묘에 동행해왔다. 아들 한만수는 한세진에게 수고했다면서도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충고한다.


<파묘>에서 거칠게 요약된 이순일의 삶은 <무명>에서 드러난다. 할아버지 밑에서 ‘순자’라고 불렸던 세월과 친구 ‘순자’를 만나 위로받았던 날들, 친구의 배신과 잊고 지냈던 일들이 있었다. 가족들이나 인부들의 무심함에도 이순일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결혼 후 일하던 시장에서 부부가 사기를 당했을 적에도 남편 한중언은 괴로움에 일상을 놓아버렸지만 이순일은 흔들리지 않고 가장이 된 딸 한영진을 묵묵히 뒷바라지다.



이순일은 제 방에 물건을 가득 쌓아 놓는 습관이 있다. 그러고는 물건도 과거도 삶도, 잃어버렸는지 잊어버렸는지 모른 채 지낸다. 그저 모든 게 그곳에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이런 습관은 폭력과 모욕의 긴 세월을 견뎌온 이순일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을 것이다. 이순일은 자기가 겪었던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모르고 자라기를, 그저 무사하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름이 없음을 뜻하는 <무명>은 색 없이 소박한 옷감이자 불교 용어로는 인생에서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을 말한다. 이순일은 ‘순자’로 불렸던 지난한 과거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던 핏줄들과 친구들, 수많은 죽음들, 희로애락의 감정까지도 잊은 듯 용서한 듯 담담하게 살아간다. 그의 감정이 드러난 것은 단 한 번, 그와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토마토 화분을 사돈 네 아이들이 뜯어놓았을 때뿐이다. 다른 일들보다 그 일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그가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삶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만수의 친구가 된 뉴질랜드 노인이 이순일에게 보내온, ‘당신은 위대하다’라는 선물 메시지에 한세진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타인에 대해 쉽게 말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그것이 비난이든 칭찬이든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상처를 입히기 쉽다. 한만수가 한세진에게 ‘효’에 대한 수고로움을 말했을 때나 팟캐스트를 들으니 정치적으로 편향되었을 거라고 단정 짓던 일, 한영진이 한세진에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라고 말했을 때가 그런 순간이다. 자신에게 진리인 것이 타인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며, 타인의 생각은 단순해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복잡함과 드러나지 않는 무수함이 그 속에 있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를 구할 수 없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설명한들 닿을 수 없는 일들을 이순일은 알고 있다. 파묘에 동행했던 한세진도 이러한 삶의 태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다가오는 것들>에서 한세진은 동거인 하미영을 통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친척 제이미로부터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두는 일은 ‘아주 강한 동조’라는 생각을 전해 듣기도 한다.


여러 경험을 통해 한세진은 느꼈을 것이다.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에도 계속되기에, ‘다가오는 것들’이 있기에 실망하고 분노하면서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독자인 나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용서받을 수 없지만 용서를 구하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이해를 해보려는 노력이 저마다의  힘이 될 거라는 걸.




책 정보 : 《연년세세》 황정은 글, 창비 펴냄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쉼보르스카의 시를 닮은 아름다운 유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