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먹방과 맛집이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에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자본주의의 식탁》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흥미를 자극했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예찬》에서 발췌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만나 한동안 사로잡힌 기억이 있다.
저자는 음식이 욕구에서 욕망으로 전환되었다고 진단했다. 생명 활동을 위한 근본적인 행위였던 음식이 우리 사회가 기아를 극복하게 된 이후부터 사회문화적 행위로써 기호화, 가치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 두드러졌기에, 책에서는 오늘날 대도시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식생활 양식을 주목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브리야 사바랭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한다.
요즘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말해달라.
그렇다면 현재 당신이 속한 곳이
어떤 세계인지 말해주겠다.
콘텐츠가 소비 위주에서 생산으로 전환되었다면 음식은 개인이 생산하는 것에서 소비하는 형태로 확연하게 전환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럿이 함께 먹거리를 주문할 때는 통일성과 경제성, 그리고 조리 속도 위주로 음식을 선정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랬던 우리 사회도 빠르게 변화하여 이제는 차 한 잔 속에도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온전히 담겨 있다. 이렇듯 음식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는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가변적일 수에 없다.
다수가 만들어낸 안정적인 수요와 운송기술 발달이 맞물리면서 음식은 탈지역화되었고, 그로 인해 정립된 음식 문화의 주요 성격을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음식 문화 방식은 전통적 먹거리 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에 속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음식은 공간적 · 시간적 제약을 극복한 '상품'으로서 기능한다.
전통적인 지역 음식에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있었다. 책에서는 음식 생산뿐 아니라 유통에 있어서도 '훈제, 절임, 발효, 건조와 같은 전통적인 가공법이 효력을 잃지 않는 거리 내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전통 음식은 이런 한계를 통해 문화를 생성해왔으며 자연환경과 사회적 관계 안에서 맥락을 형성했는데, 탈지역화가 이를 해체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일정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와 동시에 먹거리에 내포되어 있던 생생한 맥락들을 상실했다.
- 《자본주의의 식탁》 본문 중에서
시간상으로 볼 때 과거 먹거리는 주로 장이나 김치, 장아찌처럼 한 해에서 여러 해를 아우르는 음식에 계절 음식이 포함된 형태였다면, 현재는 발효 음식도 주문으로 대체되면서 섭식이나 보관 기한이 짧아졌고 외식, 즉석식품, 밀키트처럼 한 끼 단위로까지 축소되었음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음식은 거리의 한계도 뛰어넘는다. 도시인들은 낮에 쌀국수를 먹고 저녁에는 뇨키를 즐길 수 있는, 시공간이 압축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나 역시 철저한 도시인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한 해에 한 번 하는 김장도 부담으로 느꼈고 부모님들도 점차 김장을 하지 않거나 줄이는 추세다. 이제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보다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고 구매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더 쓰고 있다. 식생활을 위한 노동을 절약하게 된 반면 음식이 갖고 있던 시공간의 정서와 온갖 이야기들을 상품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책 정보 : 《자본주의의 식탁》 구슬아, 자음과모음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