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먹방과 맛집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맛에 대한 관심이고 두 번째는 음식이 상실한 맥락을 채우고 싶은 욕구다.
먼저, 맛없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무식욕자나 고행자가 아닌 한 하루에 평균 한두 번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맛을 향한 관심은 나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므로 콘텐츠 소비층도 타 주제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다. 소식을 지향하는 나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지만 어쩌다 먹방을 보게 되면 재미를 느낀다. 다만 넘치게 많이 먹는 것보다는 맛있게 먹는 모습이 더 보기 좋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욕구와 욕망을 대신 실현하는 '놀이'로 기능한다. 과거에도 미식 기행문이나 요리 만화 등이 이를 제공했는데, 영상 매체에서는 글로는 어려웠던 '맛있어 보이는' 상태를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미각과 후각은 전달할 수 없지만 시각과 청각을 실감나게 구현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인다.
과거 맛집 프로그램에서는 리포터라는 관찰자가 맛을 전달했다면 오늘날에는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는 더 가까운 관점으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맛을 경험하기 위해 대기 시간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못 먹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 등 표현 방식도 다양화되었다. 대리만족에 머물지 않고 직접 경험할 수도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다.
다음으로 음식이 상실한 맥락을 다른 것에서 찾으려는 심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음식점의 서사와 수제 음식, 오픈 키친, 그리고 '착한 식당'에 대한 관심이 현대인이 음식에서 느끼는 노스탤지어라고 진단했다. 인공적으로 변한 식생활 환경에서 잃어버린, 건강과 향수를 모두 충족시키는 상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의미에 대한 열망은 현실에서 실제로는 결여된 것, 즉 지금 여기에 없는 무언가를 향한다.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 자리하는 수사는 '자연'이다. 근대 이래의 음식 상품화 과정이 곧 자연이 먹거리에 부과하는 제약을 극복하는 동시에 이로부터 멀어지는 노정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 《자본주의의 식탁》 본문 중에서
음식점이 갖는 서사로는 화제성과 평판, 역사, 유명인의 인증 등이 있다. 서사를 위해 원조와 '진짜 원조'까지 등장하고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포를 고집하기도 한다. 손님들이 긴 대기줄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최고의 홍보가 되기에 그렇게 보이도록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음식점도 많다. 한때는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는 안내문도 유용했으나, 흔해지다 보니 역으로 "TV에 나오지 않은 맛집"이라는 홍보로 웃음을 자아내는 곳도 있었다.
수제 음식은 인공적인 것과 반대 의미로 자연이나 전통에 가까운 음식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점을 햄버거 체인의 등장 이후로 보았다. 햄버거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매장에서 조립하는 음식이고, 수제는 처음부터 한 명의 요리사가 모든 과정을 진행한 음식이라는 의미로 인식된다. 그런데 수제 햄버거라면 빵부터 해시브라운, 치즈, 포테이토 스틱까지 모두 수제일까?
오픈 키친과 '착한 식당'도 조리 과정을 알 수 없기에 발생하는 음식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제거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지금은 종영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이라는 강력한 표제어를 내세워 식당을 선별했는데, 그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재료를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하기
여의치 않을 경우 매일 새벽 깐깐하게 재료 고르기
소스나 장류마저 직접 만들기
MSG를 사용하지 않고 맛있게 만들기
이 어려운 과정을 기꺼이 하기
'착한'이라는 단어는 이분법적이고 모호하며 주관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 있지만, 선을 긋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공감을 받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수사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는 '착한 식당'은 현대의 먹거리 구조에서 "구조를 역행하는 능력으로서의 선"을 요구했다고 지적한다. '수제' 음식도 완벽한 수제이기는 어렵다. 이런 수사법에 허구성이 없는지 현 시대의 구조와 윤리 담론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에는 다양한 욕구와 기대치가 담겨 있다. 맛과 영양, 건강, 분위기, 즐거움, 포만감, 그리고 서사까지 기대한다. 때때로 재현하기 힘든 추억까지도 되살려주기를 바란다. 결국 이런 여러가지 욕구를 대리 실현해주기 때문에 먹방과 맛집 프로그램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막연하고 다양한 기대를 품는다면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 욕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더 즐겁고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 정보 : 《자본주의의 식탁》 구슬아,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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