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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26. 2022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독서와 예술이란?

《독서에 관하여》를 읽고


민음사는 2012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번역본 발간을 시작해 올해까지 11권을 펴냈다. 이 책을 2014년부터 일 년에 한 권꼴로 사서 읽는 중인데, 방대한 주제와 여백마저 없는 분량 탓에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1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늘 고민하면서도 감히 시도할 마음이 나지 않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독서에 관하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다.


작가와 이름 같은 줄 알았던 화자 마르셀은 알고 보니 프루스트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인물이었다. 독서와 모든 방들과 성당을 사랑하는 일, ‘마들렌’의 달콤한 냄새로 환기되는 즐거운 기억들, 자연과 예술을 찬미하는 일, ‘엘스티르’와 ‘스완’이 대변하는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에 대한 관심까지, 마르셀은 작가 자신이며 마르셀이 동경한 예술가는 존 러스킨이었음을 알게 되다.




프루스트는 러스킨의 글과 사상을 좋아하여 그의 저작들을 번역했다. 《아미앵의 성서》 역자 서문에 인용된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러스킨의 글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미앵 성당의 벽면에 새겨진 부조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눈으로 읽으면서 손끝으로 느끼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구글맵으로나마 성당을 관찰하며 자상한 두 인도자들 덕분에 성당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프루스트는 러스킨을 ‘대선지자 중의 한 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러스킨의 인도에 의해 예술을 대하는 식견을 넓힌 프루스트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론을 펼쳐 보인다. 《참깨와 백합》 역자 서문에서 그는 러스킨의 견해를 반박하고 나선다. 러스킨은 독서를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치켜세운 반면, 프루스트는 독서가 단지 ‘정신적인 삶’을 살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며, 이것이 규범이 되고 삶을 대체하려 할 때 오히려 위험해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역자가 책을 소개하는 서문에 쓰기에는 꽤 강렬하고 인상적인 견해였다.



나아가 프루스트는 러스킨이 도덕론에 매몰되어 예술을 평가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예술은 무언가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진리만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스킨을 찬미하고 반박하면서 프루스트 또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리라. 프루스트의 태도를 통해 비평의 올바른 자세를 배웠다. ‘비평은 바르게 좋아하고 바르게 싫어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프루스트를 통해 실감했던 것이다. 객관적인 견해를 제공하고 근거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야말로 예술을 즐기고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그는 샤르댕이 그린 소박한 대상들과 렘브란트가 노후에 그린 인물화와 자화상에서 발견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논한다. 이 그림들이 특별한 이유는 현실 세계의 평범한 사물들에 깃든 고유한 아름다움을 화가들이 포착하였고, 당시에 화가가 느꼈던 찬란한 순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들을 두고 프루스트는 예술이 ‘우리의 삶에 말을 걸고 영향을 주며 서로를 교감시킨다’라고 표현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심미안을 통해 선별된 아름다움을 렌즈 삼아 삶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이러한 사유가 녹아 있어서인지 프루스트는 소설에서 인물들과 주변의 자연과 사물 하나하나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고 그 특별한 순간에 대해 섬세한 은유를 통해 전달한다. 덕분에 그의 소설은 독해가 쉽지 않은 책이 되었지만 그가 《독서에 관하여》에서 말한 대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모습을 감춘 수많은 아름다움을 책이 그들에게만 선사하는’ 비밀을 품은 책이 되었다.


프루스트에게 독서와 예술은 공통적으로 ‘무엇을’ 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화하고 표현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지루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 책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해하고 싶어 애쓰는 상황에서 만난 덕에 내겐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책으로 다가왔다.


프루스트는 독서란 우리 내부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고, 그것이 바로 독서의 가치이자 한계라고 말했다. 독서에 관하여 나의 견해를 말하자면 울림을 주는 한 문장만 발견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내 안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자, 책을 덮는 순간부터 생각을 재편하는 '나의 시간'이 시작되도록 하는 일이다. 이 글을 씀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을 동력을 얻는다.



책 정보 :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글, 유예진 번역, 은행나무 펴냄

함께 읽은 책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글, 김희영 번역,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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