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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13. 2022

디지털 중독, 읽기로 해독하기

《다시, 책으로》를 읽고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 순간 텍스트를 접하지만 읽기의 방식이 기존과는 달라졌다.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읽고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지고, 집중해서 읽지 못한 채 그것을 ‘안다’고 여긴다.


정보의 성격도 달라졌다. 과거에 정보는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것이었지만, 매리언 울프가 인용한 버락 오바마의 말처럼 정보는 이제 “힘이나 해방의 도구가 아닌 기분전환, 일종의 오락”이 되어버렸다.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은 주의력을 분산시킨다. 우리는 수용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인지적 인내’ 기능의 쇠퇴 때문에 정보를 처리하는 데 점점 어려움을 겪는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정보를 통합하거나 추론하는 능력을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디지털 환경의 ‘비회귀성’은 지나간 일을 숙고하여 종합하거나 반성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가짜 뉴스에 자주 현혹되는 현상이 그 증거가 아닐까.

읽기와 멀어지면서 우리가 잃은 또 하나의 보석은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능력’이다.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보고, 이해하고, 인식해야 겨우 가능한 것인데 디지털 문화의 훑어보기로는 닿을 수 없는 깊이라는 말이다.


 울프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읽기의 고유한 본질은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책 읽기만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음을 강조했지만, 디지털 문화권에서는 ‘무관심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들이 계속될 경우 저자가 우려한 것은 언어와 사고가 위축되고, 타자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위험성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대중을 선동하기 쉬워지고, 공감 능력의 마비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자를 배척하다 보면 조지 오웰이 그린 《1984》와 같은 세계가 될지 모른다. 언어는 기능적으로만 존재하고 사상이 편향화되어 다른 생각을 배척하고 제거하는, 정치 조직과 같은 사회화가 되는 것이다.




매리언 울프는 디지털 시대에 인지와 감성의 변화에 따른 최선의 보완물이자 해독제는 역시 ‘읽기’라고 주장한다. 왜 읽기가 해독제일까? 울프는 읽기의 기능을 탄광의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에 비유하여 ‘정신의 카나리아’라고 정의했다. 깊이 읽기의 과정에서 뇌 회로의 움직임이 활성화되고 이미지화, 배경 지식의 처리, 공감, 비판적 분석과 유추, 추론과 통찰의 과정이 일어난다고 논증한다.


깊이 읽기는 또한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 깊이 읽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삶을 둘러싼 환경 너머로 여행하는 데 필요한 최고의 이동수단'을 제공한다. 이러한 반짝이는 순간을 일상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은 느리게 흘러가고 과거의 의식과 감정은 희미하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나 게임을 통해 가상 세계의 속도감과 모험을 경험한 디지털 세대들은 현실의 지루함 대신 온라인을 택한다. 그러나 책은 속도감과 모험뿐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읽는 삶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시한 좋은 사회의 세 가지 삶인 지식과 생산의 삶, 즐기는 삶, 관조의 삶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식을 위한 책 읽기와 즐기는 책 읽기는 누구나 쉽게 경험하지만 관조의 읽기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의를 분산시키는 환경 속에서 그것은 ‘저항’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가능하면 빠르게, 필요하면 느리게’ 읽으면서 최선의 생각을 향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를 넓혀감으로써 관조의 읽기를 경험하기를 울프는 강력하게 권유한다.


이렇듯 저자는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여러 이유로 읽기를 주장하면서도, 독자 스스로 ‘왜 읽는가’라는 물음을 던져 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라는 멋진 답을 했다.


나에게 책이란, 경험할 수 없는 먼 시공간의 세계가 정제된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세계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나를 확장하기 위해, 휴식을 위해, 위로받고 싶어 읽는다. 조금씩이지만 이 다양한 욕구를 골고루 충족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아주 느리지만 느닷없이, 언젠가 읽었던 이야기가 정신과 몸에 던지는 찌릿한 자극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잠 못 이룰 고민이 없고
읽고 있는 책이 재미있다면 충분히 좋다.





책 정보 :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어크로스 펴냄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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