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면 보게 되리라.
이 책의 서두에 인용되어 있는 이 말은 디스토피아를 계시하는 듯하다. 잠들지 않는 첨단 도시를 내려다보며 한 로봇이 풍선을 들고 있는 표지 그림도 의미심장하다. 노을 지는 하늘에 외로이 떠 있는 풍선은 곧 사라질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다가올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 원더박스 / 교보문고
리처드 왓슨은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는지’와 신기술이 이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가 이 책의 주제라고 밝히고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울러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빨리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할 것이고, 그로 인한 문제에도 먼저 부딪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수차례 인용하고 있는, 어느 한국인 부부가 게임에 빠져 아이를 방치한 사건에서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고찰 없이 디지털 세상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상상해왔던 미래는 이미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먹고 자고 씻는 것 외에 대부분이 생활을 가상의 세계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고 집에서 업무를 보고, 쇼핑하고, 디지털 기기로 대화하고 놀이를 한다. 실물 화폐는 명절 때 기분을 내는 용도로나 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중요한 지적은 “모든 기술은 결국 우리에게 똑같은 상품, 즉 편리함을 팔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관계와 인간성을 축소하고 삶의 기반인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왜 기술에는 더 많이 바라고
서로에게는 덜 바라는가.
- 셰리 터클 -
편리함과 효율성은 보이지 않는 상실과 잔혹성을 동반한다. 클릭으로 뚝딱 음식이 배달되는 기술은 편리하지만, 기술 뒤에는 대자본이 데이터베이스로 시장을 독점하고 소상공인에게 광고비와 수수료를 착취하며, 배달 시장의 경쟁과 위험이 숨어 있다. 언제든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 안에는 열악한 공장식 축산과 필요 이상의 도축이 자행되고, 이로 인해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얼마 전 켄 리우의 소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인상 깊게 읽었다. 기술이 극대화된 미래의 가족 관계를 그린 12편의 단편 중에 〈곁〉이라는 작품에서는 병든 어머니를 간병 로봇에게 맡겨 두고 어쩌다 한 번 로봇에 접속하여 모니터와 로봇 팔로 원격 간병을 하는, 끔찍하게 첨단화된 이야기를 보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온라인에 글을 쓰고 다운로드를 받을 때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이유는 인간을 위한 편리함을 넘어, 인간을 배제했을 때의 편리함을 향하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옮기자면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인지와 정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기술을 주도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뒤처지고 소외된다. 플랫폼과 기술에 친숙해지지 않으면 일상에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유례없고 예외도 없는 팬데믹 상황을 겪고 있기에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는 미래를 체험할 수 있었고, 일상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도 느껴 보았다. 앞서 소개한 소설과 이 책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미래가 올지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는 의도이다. 수동적으로 변화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책 정보 :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리처드 왓슨, 방진이 옮김, 원더박스 펴냄
함께 읽은 책 :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