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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08. 2022

낯선 것은 경이롭고, 경이로운 것은 아름답다

[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를 다녀와서


올해는 회사 프로젝트와 개인적인 일 겹쳐서 주말까지 출근하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매일 한 편씩, 33개의 글을 발행한 참이었다. 그러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얼마 전에 본 전시회 일정 언제까지였더라? 달리의 전시였는데.


싸늘한 예감에 놀라 검색해보니 기억과는 일정도 장소도 달랐다. DDP 전시관, 엊그제 종료? 이런 땅을 칠 소식이라니. 나란 인간이 구백 마흔다섯 번째 싫어다. 그 하루의 에너지 얼마쯤을 마음을 가다듬는 데 쓰고 돌아온 저녁, 남편 달브에게 단념 소식을 전했는데 그 역시 검색을 해보았단다. 


"자기가 한가람미술관 가자고 했는데?" 그랬더랬다, 달리의 전시가 두 곳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이런 허당미에 허술미까지 갖춘 인간하고는. 상황이 바뀌니 미움도 미화가 된다. 어쨌거나 이렇게 우리는 휴가를 내고 오전 10시 반 도슨트에 맞춰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수요일 개장 직후인데 지하 6층 주차장까지 자리가 없었다. 평일 오전에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이 이렇게 많구나. 입장하기 전부터 낯선 기분을 느꼈다.




전시명은 [초현실주의 거장들]이었고 모두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소장 작품들이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작품 설명 옆에 "이 작품은 여행중입니다"라는 태그가 붙어 있다. 의인화한 표현 하나로 단순한 안내문마저 아름다워진다. 그들도 이와 같이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를 원했던 것일까?


전시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만 레이, 이브 탕기와 에일린 아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달리와 마그리트는 한국인들이 특히 사랑하는 작가들이라고 하는데, 한동안 달리의 그림에 사로잡혔던 탓에 나의 필명에도 달리의 영향이 일부 들어있다.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Couple aux têtes pleines de nuages 1936 @ Salvador Dali,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는 미술사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문학과 시였고 뒤이어 회화와 조각, 영화, 사진, 공연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한다. 1924년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가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를 공식 선언했고, 책으로도 남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섹션마다 새겨진 그의 문장들이 관람객들을 는데, 점층으로 진행되다가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문장 유독 시선을 붙들다.


경이로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초현실주의 탄생 배경에는 1차 세계대전과 다다이즘이 있었다. 전쟁의 충격은 가치의 전환점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가능성의 세계를 열기 원했으며 꿈과 욕망, 무의식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새로운 현실로 나아가고자 했다. '찾아낸 일상용품'이란 의미의 '오브제 투르베' 기법 등을 활용해서 미술가들은 '새롭고, 놀랍고, 과격한' 방식으로 초현실주의를 구현다.


커플 Le Couple, 1922 @ Max Ernst,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 Flickr

내가 느낀 초현실주의는 대상을 가능한 유사하게, 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하려 했던 '관찰'하는 예술에서 '발견'하는 예술로의 전환이다. 지금껏 나는 잘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생각도 글도 관찰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관찰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찰할 대상을 조합해다. 그리하여 '낯설게 보기'를 통해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다시 현실을 보다 자세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그들이 창조한 새로움은 백 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고 바다와 육지건너 나의 눈앞에서 당당함을 뽐내고 있다. 이 굳건한 힘을 이어받아 글쓰기에 오브제 투르베를 적용해보기로 한다.




섹션을 다 돌 빨간 벽이 세워진 마지막 섹션만 남았다. 벽 뒤에는 미성년자 관람 제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 각자 감상하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도슨트는 끝이 났다. 얼마나 기하고 야스러운 작품들일지,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입장을 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한스 벨머의 '인형' 시리즈였는데 둥그런 물성들을 조합한 오브제를 찍은 사진 또는 도형으로 그린 스케치들이었고 그 배치들이 적나라한 여성의 나체와 자세를 은유하고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한스 벨머의 그로테스크한 작품들보다는 수위가 낮은 작품들이었고, 긴장이 풀린 달브는 이 한 마디를 남겼다. 


초현실주의의 에로티즘은 볼만한 게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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