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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25. 2022

라이킷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

문장과 세계 #3


몇 년 전부터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두 지인이 있었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도 브런치를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등단 작가였고 나는 한낱 책을 좋아하는 디자이너였기에 브런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저 늘 책을 읽고, 무언가 쓰지 않을 수 없는 책들에 대해 약간의 글을 쓰고, 그런 글들을 여기저기에 보관하고 있었다.


폴더에 저장된 글과는 달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는 다른 긴장을 맛보았기에 올리고 퇴고하기를 수없이 반복하곤 했다. 조회수가 없어도, 누군가 읽을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글은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글에서 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했다.


만약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어떤 권위를 갖는다면 아마도 그 권위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의 권위는 점차 사라진다. 이제 더 이상 그는 작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허삼관 매혈기》 서문에서 위화는 이렇게 말했고, 나는 서문에서부터 작가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언젠가 책이라는 걸 쓰게 된다면 이런 태도를 가지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웬만해서는 책을 내지 못할 것이었다. 특별한 경험도 없고 제안도 없을 거니와 내 부족한 글 때문에 나무들을 희생시킬 수가 없어서.



제야 브런치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에게 덜 미안하고 '발행' 버튼으로 나의 글을 세상에 떠나보낼 수 있으며, 그러고도 수정과 취소가 가능하니 뒤늦게 발견한 부끄러운 오류를 줄일 수 있으니까. 은 용기를 내서 몇 달 전에 옮기다 만 네댓 개의 서평을 다듬었고 우쿨렐레 배움기를 써보기로 했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막연했던 계획을 정리해서 그 하루를 넘기지 않고 신청을 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에서 활동하기를 원해서인지 '브런치 합격 꿀팁'에 관한 글들은 조회수가 폭발한다. 나에게는 합격 꿀팁 같은 건 없지만, 흥미롭게 여러 글들을 읽으며 나누고 싶었던 말들을 적어 본다.




01. 작가소개

첫 질문부터 쓸 말이 없었다. 나에겐 어떤 이력도 없었고 직업과 나이처럼 정형화된 카테고리나 숫자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간단하게 썼다.

퇴근 후가 더 바쁜 직장인 유달리입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에 독서와 배움을 재료로 한 저의 순간순간을 담고 싶어요.
글을 다듬으며 마음과 태도를 매만지고, 그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저의 경험을 타인과 나누고 공유하고 싶습니다.


02. 브런치 활동 계획 + 03. 글 작성 샘플

즉흥적이었지만 쓰고 싶은 건 많았기에 주제별로 분류했다. 서랍에는 6편 남짓한 글이 있었고 목차는 각 주제당 6~10편으로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이런, 활동 계획은 300자까지만 쓸 수 있단다. 계획서에서 2/3를 축소하고 삭제해서 마지막 한 자까지 알뜰하게 활용했다. 글 샘플로는 주제별로 한 편씩 선택했고, 아래 글에 링크했다.


[주제 1] 서평을 통해 좋은 책을 소개하기

1) 어떤 경험은 어딘가에 고여 있다가 갑자기 녹아든다 : 《여름의 빌라》를 읽고

2) 어린이를 환대하고 존중하는 어른이로 자라기 :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주제 2] 배움의 기록 : 우쿨렐레 입문기

1) 내 삶의 자산, <언젠가 목록>

2) 유레논이 될 거야


[주제 3] 문장과 세계 / 텍스트와 삶에 관한 에세이

1) 문학으로 술과 친해지기

2) 공부에 대한 생각


[주제 4] 그림독서록 / 특별히 애정하는 책들을 글과 그림으로 소개하는 시리즈

1) 전쟁과 평화

2) 데미안


04. 활동중인 SNS나 홈페이지

브런치 서랍에 작성한 글 외에 활동 이력도, 보여줄 만한 SNS조차도 없어서 비워 두었다.




이렇게 제출한 뒤, 합격도 불합격도 예상하지 않고 순진하게 5일 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음 날 갑작스런 합격 메일을 받았다. 낯선 누군가가 내 속에 들어가 쾅쾅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떨려왔다. 그리고 궁금했다. 무엇 때문에 통과가 된 것일까? 내 서평은 나나 재미있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대체로 딱딱한 글이고 관련 지식이나 고유한 인식도 부족하다는 걸 안다. 처음으로 써본 에세이는 서툴고 가볍다. 왜였을까? 서평 쓰는 분들도, 그림 그리는 분들도 많으니 아마도 음악 카테고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궁금증을 안고 나를 환대해 준 브런치에 입성했다. 인정받는 건 신나는 일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소개할 것 없는 나를 작가로, 내 시시한 글을 작품으로 불러주기 때문일 것이다. 글 발행 욕구에, 또 사람들의 글에 빠져 책 읽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지런히 둘러본 브런치에는 이름난 사람들과 화려한 이력을 소유한 이들이 넘쳐나고, 게다가 진솔한 글을 쓰는 분들도 참 많았다. 네모 반듯하게 출판으로 완성된 글과는 다른 매력의 글들이 좋다.



고백한다. 요즘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문장은 '~님이 라이킷했습니다'라는걸. 브런치 입성 8일 차이니 그럴 만도. 자꾸 알림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글을 올렸다고 챙겨 읽어주기에, 잘 봤다고 인정해주기에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알림창>이 아니라 <작가의 서랍>이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면 된다. 말보다 글이 먼저 흘러나오고 글쓰기 톤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를.


이렇게 생각하며 기대를 접어두고도 하트를 남기는 분들에게 흔들리곤 한다. 따뜻한 사람들, 왜 이렇게 다정할까. '좋아요'의 의미도 있겠지만 흔적을 남기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도 알면서도, 그래도 이토록 힘이 되는 흔적이라니. 아무려나, 글에 취해 있는 요즘이다. '라이킷 수가 10을 돌파했습니다' 정도면 취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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