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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4. 2022

감염병 시대의 삶과 문학

문장과 세계 #6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다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동안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동료 절반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그때마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했다. 두어 주 잠잠하다 싶더니 어제 퇴근 후 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감염병 시대를 살다 보니 어제오늘이 다름을 경험한다. 예측이 어려운 상황 탓에 관련 정책이 수시로 바뀌면서, 느리게 변화해온 사회 제도나 인식에 익숙했던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도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금세 적응하는 모양새다.


그에 비해 회사 정책은 반 발짝씩 느리다.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지침이 없어 불안하게 하더니, 그게 문제가 된 후 지금까지 매번 신속항원검사를 지시한다. 식사도 같이 하지 않았고 증상도 없으니 이 시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나 싶은데, 출근하려면 음성확인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십여 차례의 경험상 양성이 되더라도 오늘은 아니다. 그래도 어쩌랴, 되도록 서둘러 검사하고 결과를 알려달라는데. 주말 아침 일찍 지난번에 검사를 받았던 병원을 다시 찾았다. 입구에는 소독약이 뿌려진 발매트가 놓여 있고 신발을 소독한 뒤 입장하라고 써 있었다. 평범한 안내문은 아니었다.



소독 매트에 신발을 비비빅
비빅비비비비고 들어오세요.


이 글을 읽고도 신발을 부비지 않았다면 오랜 단골 아니면 유머나 문학적 표현에 둔감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재치가 넘치거나 안내를 무시하고 들어오는 방문자들로 인해 격해진 것이리라. 시키는 대로 화려하게 발을 놀려본다. 흥이 돋을뻔했다. 시대의 위험이 나를 춤추게 하는 아이러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 증상을 묻기에 상황을 얘기했더니 냉정하게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한다. 이제 증상이 없 음성확인서 발급을 위한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이게 다 세금이라고. 그래서 확인서 말고 검사만은 안되겠느냐고 물 그는 회사의 정책이 의사의 판단보다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말과 태도에 전적으로 공감했기에 "알겠습니다"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는 나는 감염병 시대를 사는 직장인이다. 다른 곳에서 검사한 결과는 음성이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몇 번 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염에 대한 우려가 한창일 무렵, '여섯 개의 세계'라는 부제가 붙은 단편 소설집 《팬데믹》을 만났다. 김초엽, 듀나, 정소연 등 쟁쟁한 작가들의 개성 있는 작품들이 현 사회를 돌아보게 하고 얼마간 우려스러운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그 가운데 배명훈 작가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라는 작품이 돋보였다.



그 시대 사람들의 입이 거슬렸다.
그것은 고상함이나 우아함의 문제이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팬데믹이 언어 체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생존한 이들은 팬데믹 이전 시기를 혐오와 야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참으로 이상해서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읽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결정적인 부분이라 말할 수 없어 아쉽지만 개연성 있는 설정에 공감하고,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움에 감탄했다.


모두가 힘들었던 팬데믹 시대에도 웃음과 신념 그리고 상상력은 살아 있었다. 그마저 없었다면 어찌 버텼을까. 끝나지 않는 양성 판정에 긴장을 늦출 수 없고, 깊숙하게 들어와 휘젓는 면봉에 눈물이 나지만 견뎌본다. 새로운 질서와 여전한 웃음과 더 풍성해질 상상을 기대하면서.




책 정보 : 《팬데믹》 김초엽/듀나/정소연/김이환/배명훈/이종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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