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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04. 2022

어지러울 만큼 달랐던 낮과 밤

문장과 세계 #7


사람 일 참 알 수 없다.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풍경 좋은 펜션에서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집에 돌아온 일요일 오후부터 어지러운 증세가 시작됐다. 누워서 고개만 살짝 돌려도 세상이 팽그르르 돌면서 토할 것 같다. 키클롭스가 두 발목을 쥐고 사정없이 돌리는 듯한 느낌. 뇌가 흔들리고 눈동자도 돌아간다. 움직일 수 없다.


버티다가 진정이 되지 않아 늦은 밤 응급실을 찾았다. 차를 타는 자체가 어려운 상태였는데 찾아간 두 곳은 응급실이 있지만 휴일 운영을 하지 않았다. 판단이 서지 않아 남편 달브는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초조하게 검색을 했다. 세 곳에 전화로 문의를 하고, 두 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두 곳을 제외한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이석증이귓속 전정기관 염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어지러운 건 당연한 일이고 구토가 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설명해주시니 안심이 됐다. 곧바로 시작된 교정은 앉은 상태에서 침대로 홱 누이고 고개를 양쪽으로 휙휙 돌렸다가 갑자기 일으키는 거였다. 어지럼, 울렁, 구토와 오한이 동시에 올라온다. 어지러움도 통증이라는 걸 이때 느꼈다. 으악 어지러워, 어지러, 하고 반말이 튀어나왔다.



교정이 바로 되지 않아 입원이 결정되고, CT 촬영부터 온갖 검사가 시작됐다. VR안경 같은 걸 끼고 귀에 뜨거운 물찬물을 쏘는 검사, 조이스틱으로 기울어진 레이저 선을 평형 상태로 맞추는 검사, 빨간 점을 따라 눈동자만 움직이는 검사, 머리를 흔들 뇌파를 측정하는 검사 등등. 가장 힘든 건 구명조끼를 입고 통 속에 하는 평형 검사였다. 바닥 움직이 몸이 흔들리는 만큼 벽도 흔들리는 구조여서 메스꺼워 주저앉고 싶었는데,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말에 초인적 힘을 발휘다. 드릴 같은 기계로 귀에 드르륵거리는 치료도 받았다.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어지러움의 원인


힘든 중에도 포스터 속 재치 있는 문구를 보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원인은 다양하다지만 병실에는 같은 증세로 입원한 분들이 계셔서 큰 위안이 되었다. 눈을 가리고 알 수 없는 검사를 할 때도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나와 같은 검사를 는 할머님이 주무셔서 잠을 깨우는 대화다. 잠이 온다는 건 무서운 검사가 아니라는 거니까. 물론 나완 달리 강심장 할머님이실수도 있지만.



비급여가 뭐냐는 환자의 질문에 신입인듯한 간호사분의 더듬거리는 설명도 어쩐지 좋았다. 비급여가요, (멈칫) 급여의 반대말인데요, (고민) 급여가 안된다는 뜻이고요... (정적) 그래서 그게요, (주절주절)... 그분은 난처겠지만 아픈 나를 미소 짓게 한 순간이었다. 글을 쓸 때 동어반복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는데 매력 있고 귀여운 동어반복도 있다는  깨달은 것이 오늘의 수확이었다.




한가로운 여행객에서 반나절만에 낙상주의 환자가 된 어지러운 하루. 이불이 없어 떨며 자다 깨다 한 달브의 보살핌과 딸의 목소리만으로 기운이 난다. 옆 침대 환자분이 통화하시며 "나 같은 사람 되게 많다?"라고 하시는 말씀도 힘이 된다. 그래서인지 시끄러운 TV 소리도 참을 만하다.


아픔의 동질감도 큰 위로였지만 그보다는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감의 바다를 이루는 브런치에서 건강한 동질감을 나누고 싶다. 이 귀찮은 수액줄을 떼 버리고 편히 글을 쓰려면 내일은 꼭 집에 가야지. 작가의 서랍도 바닥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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