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집에서만 살았다. 방 네 개, 부엌 두 개에 마루가 딸린 한옥집. 어릴 땐,정확히 대칭인 그 집의 반을 갈라 세를 주고 남은 공간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다. 작은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듬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안방엔 문이 네 개였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과 다락방 문, 뒤꼍으로 난 문 그리고 마루로 나가는 방문. 마루 오른편 작은 방이 할머니와 나, 여동생이 쓰던 방이었다.
방 두 개를 쓰던 무렵 마루 밖은 시멘트 마당이었다. 전면에 장독대와 수돗가, 화장실이 있었고 창고와 작은 화단이 두 개씩이었다. 앙상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여름이면 대문에 지붕을 만들어줬다. 그 작은 공간에 있을 게 다 있었다. 너무갖고 싶던 옥상만 빼고. 우리 삼남매가 자라면서 세를 빼고 마당을 없앤 뒤 단층 양옥으로 개조를 했다. 옥상이 생겼지만 그땐 이미 관심이 떠난 후여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이사를 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 집은 증조할머니가 구매하신 집이라고 했다. 증조할머니의 외아들은 부인과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가새 가정을 꾸렸다. 물려줄 아들이 없으니 집은혼자된 며느리,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에게 남겨졌다. 싫을 법도 하건만 할머니는 절대 그 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집을 고치고 고쳐가며 살았다.
집을 떠나지 못한 그 마음은 그리움일까, 애틋함일까 아니면 원망 섞인 고집이었을까.십 년에 한 번쯤 일본 가족들 몰래 연락이 닿던 할아버지가 찾아오지 못할까 봐 그러셨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닌 아들하고만 연락을 하셨는데.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내가 그런 마음들을 들여다봤더라면 이유를 물어봤을 텐데.
할머니는 늘 내게 베풀기만 하셨고 난 받는 것에만 익숙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들, 아플 때 이마와 배를 만져주던 약손,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 아프지 않아도 팔다리가 여리다며 주물러주던 손길, 한사코 거절해도 입 안으로 들어오는 사과와 귤까지.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건 냄비와 배냇저고리다. 첫 손녀 결혼하면주려고 너무 일찍 장만해 놓아 묵을 대로 묵은 살림들이 나는 싫었다. 할머니의 고릿적 취향을 믿을 수가 없었고 입씨름 끝에 여러 세트 중 냄비 하나만 가져가는 걸로 타협을 봤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태어난 우리 딸에게 노란 배냇을 선물하신 뒤, 할머니는 급성 뇌경색으로 세상을 달리하셨다. 일본 할아버지는 그때도 오지 않으셨고,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할머니의 마음과 안목을 너무 몰랐다. 알고 보니 그 냄비는 독일 유명 제품으로 요즘 연속극에도 종종 등장하는 빨간 법랑 냄비다. 할머니가 그 냄비 세트를 사신 게 20년쯤 전이었으니,당시에는 지금보다 구하기도 어렵고 큰돈이 들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마 눅눅한 지폐들을 꺼내느라 장판 밑을 비워야 했을 것이다.늘 거절만 하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얼마나 큰 마음을 먹어야 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지금도 매일 빨간 냄비를 끓이고 닦으며 종종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는 무슨 낙으로 사셨을까. 아마도 할머니의 삶에는 우리들과 그 집뿐이었을 것이다. 효도도 못하고 용돈도 얼마 못 드린 건 고사하고, 할머니가 챙겨 주시는 음식들과 물건들만은 거절하지 말걸 하는 깊은 후회가 든다. 한 번이라도 기쁘게 받았다면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웃으셨을까. 귤 한쪽 받아먹는 게 뭐가 어렵다고. 왜 그렇게 할머니의 손길과 선물들을 거절했을까. 왜 그 집을 지겨워하기만 했을까. 왜 그랬을까.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