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행복한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2. 서울의 잠 못 드는 밤, 우울증의 시작
처음 정신과에 가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불면'이었다.
불면증이 처음으로 찾아온 건 첫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무려 6년 전의 일이다.
까탈스러운 상사는 내가 쓰는 펜 색깔까지 지적하기 일쑤였고 압존법이니, 전화 예절이니 하는 것들로 끊임없이 지적을 받던 차에 내 머리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새벽 3시, 4시에 잠들어 7시 30분에 일어나 회사에 가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다행히도 첫 불면증은 운동과 멜라토닌으로 비교적 쉽게 떨쳐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가스 검침원처럼 해가 짧은 겨울마다 불면증이 되풀이됐고 그때마다 '또 올게 왔구나'하며 조용히 웅크려 추운 계절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해가 길어지는 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면증은 서서히 나아졌고 나도 다시 생기를 찾았다.
그 이후로도 잠 못 드는 밤은 종종 계속됐지만, 증상이 악화된 건 대학원 공부와 결혼 준비를 병행하고 있을 때였다. 자취방 계약이 끝나 결혼식을 한 달가량 앞두고 신혼집으로 먼저 들어왔는데, 그날부터 잠을 설치기 시작하더니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부 스트레스와 결혼 스트레스, 시댁과의 갈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덕분에 결혼식 전날엔 1분도 자지 못한 채 날을 꼴딱 새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증상이 더 심해져서 이틀, 삼일 밤을 꼬박 새우고도 전혀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웃긴 건 한국을 떠나 신혼여행을 가서는 꿀잠을 잤다는 사실인데, 이 나라의 유난한 '한국스러운 삶'이 나에게는 버거운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새 직장을 잡았는데, 출근 전날부터 다시 지독한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사실 회사를 다닐 몸 상태가 아니었다. 급작스러운 꼬리뼈 골절로 오랜 시간 앉아있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회사와 집이 멀어 지하철을 서너 번 갈아타고 2시간이나 걸려 출근해야 했다. 그런데도 원하던 직장이었기에 집에 있는 가장 센 진통제를 털어먹고 멀쩡한 척 하이힐을 신고 가서 3시간 동안이나 면접을 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 측에서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하며 빠른 시일 내에 출근해달라고 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무리해서 입사를 결정했는데, 갑자기 시작된 불면으로 성치도 않은 몸에 아득한 정신으로 출근 첫 날을 맞이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지하철 인파 속에서 흔들리며 그나마 남은 영혼까지 탈탈 털려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첫 순간, 무섭도록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에서 그제야 내 맘 속에서 진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와, 나 일하기엔 너무 지쳤는데?'
외국인이 많아 자유롭고 평등한 조직이라고 자부심 있게 말하던 면접관의 말과는 달리, 새 직장은 군대문화를 사랑하는 꼰대 조직 그 자체였다. 제일 윗 상사는 수틀리는 일이 있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본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상대에게 인신공격을 하기 일쑤였고, 그 아래 부장은 직원들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쌍욕을 했다. 전문직으로 들어온 나에게까지 욕을 하고 인신공격을 하진 않았지만, 답답한 사무실 분위기는 모든 직원들에게 전염된다. 더 힘든 점은 회사에서의 내 롤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직이면 내가 해야 할 업무가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는 **씨가 만들어 나가야 할 자리'라는 명목으로 이 일 저 일 던져주며 왜 하는지 모를 이상한 업무를 넘겨주기 일쑤였다. 내가 하도 '이 일 자체가 왜 필요한 일이며 왜 이런 방식으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대자 한 외국인이 보다 못해 점심을 먹으며 '이 회사는 Why?를 물으면 안 되는 곳이니 물어보지 말고 까라면 까는 게 편하다'라고 조언을 해줬다.
급작스레 다시 찾아온 불면에 경직된 회사 분위기, 서너 시간 걸리는 통근, 아직 낫지 않은 몸까지. 거기에 주말에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며 머리와 몸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나 자신을 혹사시켰다. 다시 생각해봐도 불면증에 우울증이 온 게 너무 당연했다. 병원에서 받아온 항불안제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나를 잠에 들게 해주진 못했다. 주위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는 중독성이 있다며 온갖 무서운 부작용을 나열하기에 며칠 만에 혼자 용량을 줄여 먹은 것도 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에 스무 시간도 자지 못하고 버티고 버티며 회사를 다닌 지 3주가량 지났을까. 슬슬 이상 징후가 시작됐다. 어느 날인가는 왕십리역을 지나가는데, 이곳에서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 깔깔거리며 데이트를 하던 날들이 떠오르면서 내 인생에 그렇게 행복한 날이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잠을 너무 못 자서 센티 해졌다보다 하고 말았다.
다시 병원을 찾아가서 약을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항불안제를 먹고도 어김없이 밤을 꼴딱 새버린 어떤 날이었다. 회사는 가야 하니 억지로 거실에 나와 밥을 먹는데 난생처음으로 '죽을 만큼 도망가고 싶다'는 기분을 느꼈다. '회사고 일이고 인생이고 다 모르겠고 모두 때려치우고 지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갈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다가 그 물리적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감당이 안돼서 엉엉 울었다. 아침부터 오열하는 나를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출근을 하는데, '이건 진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잘 울지 않는다. 힘든 일을 두고 도망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인생의 힘든 순간마다 항상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택했고, 도망간다는 건 어떤 순간에서도 내가 고려하는 옵션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로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상담에서 너무 울고 횡설수설해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 생각나는 건, 의사 선생님이 재차 "지금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처음 있는 일이에요?"라고 물었고 나는 "30년 넘는 인생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다는 거다. 그렇게 처방전에 항우울제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