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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Sep 06. 2021

내 호흡대로 간다

10.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인간이 되어보기로 다짐한다.

수면 놀람증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잠들만하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깜짝!' 놀라면서 잠이 달아나버렸다. 불면증이 심할 땐 매일같이 이렇게 잠들만하면 놀라면서 잠에서 깼는데, 요즘에도 나아졌다 싶으면 또 가끔씩 이렇게 이유 없이 잠에서 깨곤 한다. 진짜로 누가 나를 놀라게 하기라도 한 듯이 '어이쿠'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온몸이 각성되면서 더 이상 피곤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새벽 두 시에 혼자 거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시작해본다. 찾아보니 수면 놀람증, 혹은 상태가 심해지면 수면 공황이라고 한단다. 수면 공황은 자다가 갑자기 깨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죽을 것 같은 증세에 시달린다고 하니 나는 아직 공황 정도는 아니고 놀람증에서 그친 것 같다.


알프람을 끊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마음이 불안했다.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고, 숨이 가빠져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심장박동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냥 소파에 기대앉아서 쉬고 있을 뿐인데 숨이 가쁘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결국 수면 놀람 증도,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대고 숨이 가빠지는 것도 모두 불안 장애의 일종이다.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와, 오늘은 잠 다 잤네'하고 하루를 꼴딱 샐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다음 날 출근해서 힘들겠지, 그래도 하루 못 잔다고 죽지는 않아. 그런데 어젯밤에는 명상에서 배운 대로 내 호흡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각성된 몸과 정신은 있는 그대로 두고, 내 들숨 날숨에 집중한다. 숨을 쉬고, 숨을 뱉는다. 숨을 쉬고, 숨을 뱉는다. 더 이상 다른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다. 숨을 쉬고, 숨을 뱉는다. 들숨, 날숨.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잠들어 아침이 되어 있었다. 그래, 아직 내 몸에 불안이 많구나. 이렇게 한 번 입면에 실패해도 다시 잠들 수 있구나. 어떤 가치판단도 없이 내 몸을 알아차리고 아침을 시작한다. 따뜻한 캐모마일 티를 마시고 창밖의 날씨를 즐기면서, 일을 하는 중간중간 또 내가 너무 일에 몰입해서 긴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푼다.


처음엔 그렇게도 좋아하던 커피와 홍차를 끊어야 한다는 게 슬펐는데, 이젠 가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디카페인이 있는 게 어디야'하며 감사를 느낀다. 하루하루 이렇게 꽉 채워 지내고 나면 한 달 후에는, 세 달 후에는, 일 년 후에는, 오 년 후에는 더 나아져 있겠지. 그렇게 워라밸을 지키고 커리어와 나를 동시에 관리하는 법을 배우면서 더 다채롭고 성숙하고 행복하게 사는 내가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운'이 아니라 인연이 맞은 거죠.


부모님도, 남편도, 친구들도 모두 일 년 정도 푹 쉬라고 했는데 또 쉬는 걸 못하는 나는 쉬는 게 괴로웠다. 세 달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서 약을 차차 끊은 후에는 또 뭔가 하고 싶어서 마음이 드릉드릉했다. 불안증과 조급증도 있었지만 내 일에 대한 애착도 있었다. 내 일과 내 직무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좋고, 나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좋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고 성취감에 중독되어 있다고도 했다.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고, 그냥 나를 조일 때와 풀어줘야 할 때를 잘 알고 관리를 잘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일을 좋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그냥 '적당히 먹고살기 위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도 삼아봤는데 또 그건 그거 나름대로 최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복이고. 다만 내가 번 아웃되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를 잘 조절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일을 구할 때 기준을 조금 다르게 잡았다. 이전엔 무조건 '몸과 마음이 힘들더라도 큰 성취와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곳인가?', 'Challenging 한 곳인가?'를 봤다면, 이젠 '성취와 발전이 조금 덜하더라도(아예 없으면 또 안된다) 문화가 좋은 곳인가?', '적당히 자기 계발이 가능하면서도 내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인가?'를 봤다. 근데 조직 문화라는 게, 같은 회사라도 부서마다 다르고 또 회사에 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인지라 이 기준을 충족하는 곳을 찾는 건 더 어려웠다. 이래서 원하는 회사를 찾을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일이 잘 풀렸고, 긴가민가 하면서 또 새롭게 일을 하게 됐다. 업무량이 적진 않지만 행히도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에,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적당히 배워갈 것도 많다. 업무량보다는 내가 내 일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 눈치를 봐야 하는 것, 딱딱한 조직 문화 같은 것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에게는 최선의 조합이었다. 한 달 중 절반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어서 잠에 대한 압박도 많이 줄었다. 오늘 못 자고 출근해도, 또 다음날이면 재택근무니까.  


내 전임자에게 '내가 운이 좋았다'라고 하니 '그게 아니라 인연이 맞았던 거죠'라고 했다. 지금까지 뭔가 일이 잘 풀렸을 때, 원하던 걸 어떻게 이뤘을 때,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나보고 '운이 좋았다'라고 했다. 네가 그걸 해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나는 항상 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운이 좋았다'라고 하면 '운 없이는 이게 이뤄질 수 없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김연아 보고 '운이 좋았다'고는 하지 않지 않나. 나도 김연아처럼 운도 실력으로 바꿔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결국 내포하고 있는 건 같은 뜻인데도 '넌 운이 정말 좋다'와 '너랑 인연이 맞았나 보다'는 느낌이 참 다르다. '운이 좋았다'라고 하면 뭔가 그 사람이 한 노력이나 실력보다도 '너는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인연이 맞았나 봐요'라고 하니까 '실력도 노력도 있지만 거기에 인연까지 맞은 너의 자리야~'라고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운'보다는 '인연'이 좀 더 따뜻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론 '인연'이라는 단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해보기로 다짐한다. 동생에게도, 친구에게도 '네가 운이 좋았어'보다는 '너랑 인연이 맞았어'라고, 나 자신에게도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된 거야' 대신 '이렇게 또 인연이 맞은 거지'라고 말해보기로. 운이 아니라,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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