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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8. 2023

카페의 차경을 즐기다,

기후 위기라는 숙제를 가져왔다.

자주 가는 카페는 야트막한 야산 한 자락을 깎은 터에 지어진 곳이다. 1층은 매트리스 스프링에 조명을 매달아 놓은 인테리어 등으로 볼 것이 가득한 반면 2층은 온통 하얀 벽에 야산을 차경 삼는 통창이 큼지막 하게 나있다. 어제 강의 어린이집 해맞이 잔치를 치르고 온몸이 피곤한 상태라 커피 한 잔이 간절했던 오후. 남편과 나는 나란히 2층 창가에 앉아 목가적인 풍경에 눈을 맡기고 오후를 마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난 창을 통해 나무들을 보면 자연의 흐름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돋아난 새싹이 어느덧 영글어 짙은 여름을 품고 있다가 돌아서면 빨갛고 노랗게 물든 잎들이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며 흙으로 돌아가는 사계절 말이다. 그 사계절을 목도하게 되면 각자의 속도대로 흘러가지만 결국 같은 때, 같은 곳에 닿는 자연의 흐름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으로 느껴진다. 


지금 창 밖의 마른나무들은 겨울의 고요를 닮았다. 수십 년, 매 가을이면 땅으로 떠나보낸 잎을 애도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틔우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바람을 버티고 있겠지. 그런데 언젠가의 겨울나무들과 다른,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가지에서 말라버린 잎들이 보였다. 새로운 싹이 돋아나야 할 자리에 묵은 잎사귀들이 어쩌다 때를 맞추지 못하고 아직도 매달려 있나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여름의 꼬리가 길었던 탓에 도도한 계절의 찬 기운을 느낄 수 없었던 지난가을, 삼삼오오 피었던 동네 덩굴장미가 생각났다. 모든 것이 지는 계절에 핀 장미들은 철 모르는 아이처럼 예뻐 자꾸만 눈이 갔다. 그냥 그렇게 스스로 질 때까지 따뜻한 날이 계속되나 싶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매서운 북쪽 바람이 들이닥쳤고 꽃들을 검붉게 얼려버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장미들은 다시 화사하게 피어날 용기가 있을까. 온기를 잃은 장미들을 보며 마음도 함께 얼어버렸다. 


잎사귀는 땅으로 돌아가 다시 자신의 일부가 되고 덩굴은 매년 더 많은 장미들을 데리고 건강하게 돌아온다. 자연의 순환은 그래서 상실의 아픔은 있었도 이별의 슬픔은 없다. 그런데 얼어버린 잎사귀들은 땅으로 돌아갈 기회를 잃었고 장미는 훈풍에 배신을 맞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다 기후 위기라는 단어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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