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글이 Jan 11. 2023

오늘도 망작을 남겼어

카카오톡은 두 번 기회를 주지 않아

의식의 흐름대로 일단 쓰고 퇴고하며 정제하다 보니 초고에는 늘 내용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글을 쓸 때 겸과 강의 산만한 분위기를 타면 앞의 내용과 전혀 다른 문장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가끔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을 때도 있다.  


그래서 글을 완성한 뒤에는 꼭 소리 내어 읽어본다. 어색한 부분을 제일 빨리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1차 퇴고를 마친 뒤 글을 발행한다. 그 뒤로는 시간을 두고 온전히 독자로, 내 글을 만나며 어색한 존재감을 뿜는 문장들을 수정한다. 한 시간 뒤에 읽어보고 그날 저녁 읽어보고 자기 전에 읽어보고 다음 날 또 읽어보며 자연스러울 때까지 퇴고한다. 하나의 글을 적어도 열 번은 고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글의 골자를 빼고 갈아엎을 때도 있고 그 마저도 다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 때도 있다. 그런데 [치유의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퇴고의 기회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톡방에 올린 글만 수정할 수 없다.


글쓰기 프로젝트에는 마감 시간이 있다. 항상 손보고 글을 올리지만 단톡방에 올라간 글 속에는 꼭 띄워쓰기와 오타가 숨은 그림처럼 들어가 있고 지우고 싶은 문장들이 팝업 북처럼 떠오른다. 올리고 다시 읽고 수정하는 사이 카톡의 좋은 기능인 ‘모두에게서 삭제’라는 마법의 5분이 지나가 버리고 그렇게 내 마음에 하나도 안 드는 미완성 글이 그날의 글로 남는다. 


퇴고하고 싶은데 카톡은 왜 보낸 메시지의 삭제 시간을 5분으로 제한해 놓은 것일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메시지는 말이 아니라 글이니 5분이라는 자비를 베풀어 준 것일까? 프로젝트를 단톡방에 하는 것에 대해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쓰는 행위에 대해 반성해 본다. 집요하게 사실적이고 지질하게 구체적인 내 글이 그래도 잘 쓴 글처럼 보이려면 퇴고만이 답인데 항상 급하게 쓰고 쓰는 이의 입장에서 퇴고하는 것이 문제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알았다. 문. 제. 점! 오늘은 이미 시간이 늦었으니 망작을 남기고 내일부터 일찍 글을 쓰고 빨리 독자가 되어야겠다.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아예 세질 않아. 
만약 제대로만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 민음사

뒷북이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열심히 쓰는 나 칭찬해.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는 마법을 배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