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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05. 2023

나는 육아 중

그리고 나를 키우는 중

겸이 아프다. 이번 겨울 들면서 일요일 저녁이면 아프다.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포(켓몬)고’를 하러 나갔다 오는 날이면 열이 뜨끈하게 올랐고 점심을 대충 먹고 나간 날이면 배고픈 저녁을 급하게 먹고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오늘은 점심을 대충 먹고 나간 날. 저녁으로 인도 커리를 먹고 이제 일기 쓰자, 하고 있었는데 잘 놀던 겸이 갑자기 어지럽다며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아니, 방금 전까지 강과 깔깔거리며 놀았는데? 일기 쓰기 싫어 꾀병 부리나 의심부터 하는 나와 남편. 그런 엄마 아빠에게 억울한 듯 괴로운 표정으로 겸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배를 만져 달라는 겸을 남편이 무릎에 앉혔다. 32킬로에 142센티. 이제 곧 4학년인데도 아기같이 무릎에 앉아 안겨 있길 좋아하는 겸이 멸치 같은 남편 무릎에 앉으니 남편은 보이지도 않고 와이퍼 처럼 손만 왔다갔다 한다.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웃기는지 속으로 큭큭거리며 강을 안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겸이 속에 있는 걸 게워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한 우리 부부는 약간 얼굴이 이그러졌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괜찮아!’를 외치며 일사불란 업무 분장으로 남편은 청소를 나는 겸의 단도리를 맡았다.


소화제를 먹이고 잠깐 찬바람 쐬며 걷자며 온 가족이 나갔다. 몇 발짝 못 나가 배가 아파 안 되겠다는 겸은 남편과 집에 돌아갔고 밤산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강은 편의점에 가서 껌이라도 사야겠다고 버텨 길을 건넜다.


들어선 편의점 냉장고에 액상 소화제가 보여 네 병을 꺼냈다. 강은 오빠꺼 하나 자기 꺼 하나 풍선껌 두 개를 집었다. 어린 고사리순 닮은 여섯 살짜리 손을 잡고 집에 돌아오는 길, 시린 달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문득 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 내가 아파서 힘들어하면 엄마는 내게 그렇게 원망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왜 미련하게 먹어 체했느냐, 왜 추운데 싸돌아 다녀 감기에 걸렸느냐, 왜 등신같이 넘어져서 다쳤느냐.. 어린 마음에 그런 말들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화가 그득했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아, 엄마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오늘 밤 그 마음이 이해가 돼버렸다. 하지만 아픈 애한테 ’아픈 건 네 탓이야‘하며 비난하는 건 곤란하다. 점심은 먹을 만큼 먹고 나갔어야 했고 배가 고파도 급하게 먹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겸을 탓하던 몇 분 전 내가 부끄러웠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오늘도 나는 겸에게 부족한 엄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겸을 눕혀 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가지고 온 액상 소화제 한 병을 건네며 얼굴을 봤더니 안 그래도 깊은 쌍꺼풀이 퀭하게 보일 정도로 짙어져 해쓱해 보인다. 아픈 겸을 보니 어린 시절 자주 아프던 내가 보인다. 내 어린 시절 사진 보며 자기냐고 물어볼 정도로 유난히 나랑 닮은 아들. 그 아들을 꼭 안아주며 얼른 낫자고 네가 힘들어하니 엄마도 많이 안타깝다고 마음을 건넨다. 내 안의 아이도 들었겠지? 그래, 들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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