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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08. 2023

여행의 추억

비싼 경험 대신 바다를 주세요.

작년 5월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부산을 다녀왔다. 중요한 세미나 일정 때문에 바쁘고 예민해진 남편을 위해 집을 비워 줄 목적으로 애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대전으로 돌아오는 날 친구 어머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망함에 여행 기록을 하지 못했는데 문득 어제 2박 3일 여행 일정이 생각났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버스와 지하철 노선을 바삭하게 파악하고 있어 굳이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제일 작은 트렁크 하나에 간략한 짐을 싸서 KTX를 탔다. 겸과 강은 각자 색종이를 준비해서 올라 내려가는 내내 종이 접기를 했고 나는 책을 펼쳤다. 이제 좀이 쑤실 무렵 우린 부산에 도착했고 진짜 여행자답게 버스를 타고 해운대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부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경험시켜 주기 위해 이것저것 예매를 했다. 일단 해운대 미포에서 출발하는 스카이 캡슐. 바다를 보며 우리만 탈 수 있는 조그마한 모노레일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루했던 모양이다. 가는 내내 언제 내리냐, 멈추면 어쩌냐 무섭다, 아우성이었으니까. 스카이 캡슐은 돌아올 때 1/3 가격인 해변 열차에 밀렸다. 다음 날은 송도 해수욕장에서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웃돈을 주고 일부러 바닥이 뚫린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탔지만 여섯 살 강은 시퍼런 바닷물이 무섭다며 계속 울었다.


그럼 이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것이 무엇일까? 일단 송도 앞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먹은 것. 송도에 도착했을 때 배가 고팠지만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했을 때 겸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자는 제안을 했다. 별 다른 방도가 없었던 우리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먹었다. 평일 훤한 대낮에 애 둘을 데리고 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먹는 착잡했던 기분이란. 하지만 아이들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게 먹었고 기억했다. 나도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먹은 것 중에 컵라면 먹은 기억만 난다.


비싼 돈을 주고 탄 스카이 캡슐이나 케이블카는 그저 엄마로서 무언가 해 주었다는 만족감만 있을 뿐 아이들에게는 별 다른 기억이 되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이야기하는 게 하나 있다. “엄마. 내가 그때 옷 안 젖고 놀 수 있다 해놓고 다 젖으면서 놀았지!”


맞다. 찬 바다에서 파도를 쫓아다니고 퍼 질러 앉아 모래 놀이한 기억만은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그때 나는 감기 걸릴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값비싼 돈주며 하는 경험보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여행이었다. 앞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닷가에 던져 놔 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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