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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09. 2023

우리 어머님 화내신 날

처음이다, 정말!

우리 어머님은 낮 동안 어르신들의 지적, 동적 능력 향상을 도모하는 데이 케어 센터에 다니신다. 평소에 넋 놓고 계실 때가 많아 사회복지센터에서 뭘 좀 배워 보시라 권해도 ‘친구 못 사귄다, 뭐 하는 거 잘 못 한다.’ 하시며 한사코 마다 하셨는데. 딸들이 이구동성 외치자 마지 못 해 가시더니 그 길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첫날 나가시는 어머님의 표정이 돌아오시면 다시는 안 가신다 할 줄 알았는데. 멋 내기 좋아하시는 우리 어머님, 당신 가지고 계신 예쁜 옷들 입고 가셔서 수학(?) 100점 받아 오시고 연필꽂이 만들기도 하시고 운동도 하시며 연신 재미있다 하신다. ‘내 나이가 어때서’, ‘보약 같은 친구’ 노래를 틀어 놓고 센터에서 배운 율동을 손자들과 재미나게 하시며 얼굴에 생기 활짝 핀 것을 보면 속에 없는 말씀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속 터지는 짓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일언반구 안 하시는 우리 어머님은 우리 남편 사춘기 시절에도 화 한 번 안 내신 걸로 유명하시다. 그런 어머님을 보면 ‘아이들에게 화를 안 내긴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점 세 개를 찍고 까마귀를 날린다.


그런 어머님이 오늘 집에 오시자 마자 하소연을 하신다. “아니, 글쎄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자리가 좁으니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옆으로 좀 더 들어가 달라고 부탁을 하셨는데 그 할머니가 어머님께 버럭 소리를 지르며 꼼짝 하지 않으셨단다. 어머님 뒤로 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은 줄줄이 기다리는데 자릴 내어주지 않으니 어머님께서 많이 무안하셨나 보다. “나 이 나이 먹도록 큰 소리 낸 적 없는데 그이 때문에 화냈어!” 세상에 우리 어머님이 화를 내셨 다니! 


“아이고, 다른 어르신들 같았으면 한 대 때렸을 텐데! 그 어르신 오늘 우리 어머님이 옆에 앉아서 다행이었네!” 라며 역성을 들었다. 그제야 얼굴이 환해지시는 어머님. 내 역성에 분이 좀 풀리셨는지 그 어르신은 중증 치매 어르신이라 그렇다고 센터 직원이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님 가끔 센터에서 화나는 일 있으면 며느리 앉혀 놓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시며 위로받고 싶어 하신다. 오늘 일만 해도 그 마음 충분히 헤아려진다. 


쓰다 보니 자화자찬이 된 것 같다. 뭐, 어쨌든 나랑 남편이 싸우면 무조건 내 편들어주시는 어머님 역성들어드리는 건 당연한 일. 고부관계는 갈등으로 맺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오늘도 싱겁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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