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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01. 2023

불안의 근원

미래에 닿아있는 나의 아이 데려오기

어제 일찍 자겠다는 메시지 같은 글을 남기고 누웠는데 시작을 앞두고 불안해진 마음이 던진 낚싯대가 생각 하나를 낚아 그 줄을 하염없이 퍼 올렸다. 생각은 부정적 의견을 마음에 안겼고 하염없이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마음 때문에 심장은 폭주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새벽 서너 시에 잠드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어쩐지 그런 날들보다 더 힘든 아침이 온 건 그 불안과 우울의 무게로 마음이 퉁퉁 불어 버린 탓일 테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침을 차리고 정신을 차려보려 애를 썼지만 평소처럼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결국 가족들이 다 나간 뒤에 다시 자리에 누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1시 반 이렇게 늘어지게 자다니. 아니, 잠을 잔 건지 뭘 본 건지 잘 모르겠다. 눈을 감은 동안에도 보라고 머리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눈앞에 펼쳐 놓았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털고 일어나야 한다. 지각한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래도 한 가지, 예전과 달라진 나를 인지한다. 이 불안과 우울의 무게에 짓눌려 이불 밖을 나오지 못하거나 괜한 사람들에게 전화하지 않고 냉장고 앞으로 가 오늘 하기로 했던 부엌일을 시작하는 나를. 스스로 칭찬하며 주섬 주섬 재료들을 꺼낸다.


그럼에도 떨쳐지지 않는 불안은 산만하게 한다. 평소에는 2시간이면 끝낼 일들을 떨어뜨리고 찾고 또 찾고 잊어버리고 헤매다 한 시간을 더 쓰고 나서야 마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것도 재능이구나 애써 위로하다 근원이 알고 싶어졌다. 나는 왜 이토록 불안한 걸까?


저녁,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취기라도 올려야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막걸리 한 캔을 들고 참여했다. 저릿하게 죄여 오는 마음을 넣어두고 안부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한 문구에 마음을 온통 뺏겼다.


과거나 미래에 살지 않고 현재를 산다.


내 안의 아이는 아직 다섯 살이라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많다. 그럼 나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흠뻑 빠져 있다.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뻔한 장밋빛 미래. 그런데 정말 흥미진진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꿈꾸는 데로 불행은 없고 오직 행복만 있는 동화 같은 결말을 가진 이야기니까, 듣고 있는 동안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쁨에 젖어 있다. 하지만 지난밤 같은 시간이 오면 별안간 장밋빛 미래에 닿지 못할 두려움이 쏟아지고 현실을 살아야 하는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이루지 못할 까봐 불안에 떨게 된다.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말이다.


내 안의 아이에게 말해 주어야겠다. 동화는 동화일 뿐이라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살아낸 만큼 내일이 달라진다고 말이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내면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이제 동화 속 이야기는 공주들에게 양보하자고 일러둬야겠다.


갑자기 불안이 낚여 올라와도 다정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겠지. 동화 속 결말에 닿아 있는 나의 아이를 여기로 다시 데려올 수 있겠지. 그런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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