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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Feb 16. 2023

천재였어요.

쇼핑천재.

셀프 그림책 테라피를 진행하다가 20대 때 내가 떠 올랐다. 20대 중반 즘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로 극심한 식이 장애에 시달리며 키 171에 무게 50 초반의 몸이 되었다. 그전에는 옷을 입어도 예뻐 보이지 않았는데 마른 몸을 갖게 되니 온갖 옷을 걸쳐도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지. 그때부터 쇼핑 천재라 자처하며 소비에 매진했다. 제일 좋아하는 건 옷이었고 다음은 스카프. 그때만 해도 순수했는지 ‘백’은 두 개면 충분했고 신발은 무조건 심플한 7cm 검은색 힐이면 되었다. 돈을 벌어도 엄마한테 용돈 받는 처지에 통금까지 있어 뭘 배우기도 어려웠고, 여행은 언감생심이었으니 나의 휴식은 모두 쇼핑으로 통일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친구와 샤넬 매장에 들어가 가격을 보고 “얼마 안 하네!”를 외치던 그 호기롭던 날들이. (당시 클래식 스몰이 220만 원대, 클래식 미듐이 280만 원대였으니 지금에 비하면 싸긴 싸네!)


결혼 후에 수입원이 끊기며 살짝 주춤했던 나의 쇼핑은 겸을 낳고 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나의 오랜 친구와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82 피플 (블로그나 인스타로 물건 파는 사람들 지칭)들의 신상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공유했다. 사도 입고 나갈 때라고는 남편과 함께 나가는 주말뿐이었고 평일 5일은 만 원짜리 치마 5장을 매일 돌려가며 입을 뿐이었는데 두고두고 입을 것이란 말도 안 되는 합리화로 옷 사재기를 했다. (그리고 그 옷들은 호르몬 중독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헛옷 수거함으로 옮겨 갔다.)


강이 태어난 뒤에는 쇼핑 양상이 조금 달랐다. 강에게 입히고 싶은 원피스와 블라우스 치마들을 잔뜩 사 모으기 시작했으니까. 여자아가들의 옷이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어여쁘기만 하던지 , '이건 꼭 사야해' 하며 아기 입는 바디 슈트까지 모두 수입 브랜드로 구매했다. 뭐, 아기가 입는 거니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바디 수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강이 입길 거부한 관계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벼룩시장으로 헐값에 팔거나 남 좋은 일만 시켰다.


애들이 일찍이 자기만의 멋을 고수하며 내가 주는 옷을 입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시 나의 쇼핑에 매진했다. 청바지를 사면 어울리는 블라우스를 사야 했고 치마를 사면 어울리는 티셔츠를 사야 했고 원피스를 사면 그에 어울리는 신발을 사야 했다. 주로 구매하는 사이트에서 구경하며 내가 입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구매한 옷이 내 수중에 들어오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원해서 산 옷인데 왜 기분이 별로일까? '차선을 사서 그럴꺼야.' 나는 다시 사이트에 눈을 꽂았다.


시어머님 모시고 사는 며느리다 보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른이 계신다는 이유로 편히 사람들을 초대할 수 없고 외출할 땐 일일이 말씀을 드려야 하고 온갖 참견을 감내해야 했다. 매 끼니 밥을 꼭 챙겨야 하고 점심으로 라면 한 번 끓여 먹을라 치면 몸에 좋지 못한 라면 먹는다는 어머님의 핀잔은 꼭 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잘한다는 칭찬은커녕 인정조차 해 주는 사람이 없어 억울한 마음이 켜켜이 쌓였고 이 집의 식모나 요양보호사가 아니라는 증거를 쇼핑으로 찾고 싶었다.


쇼핑의 절정은 재작년이었다. 결혼 10주년을 이유로, 강에게 물려줄 것을 핑계로, 구라파 불란서에서 물 건너온 코트며 가방이며 참 많이도 샀다. 그 큰돈을 쓴 뒤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비싼 물건은 불편하다는 것, 쇼윈도의 새 가방과 새 옷은 내 수중에 들어오는 순간 새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가격을 생각하면 함부로 입고 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여자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편안한 옷을 입고 편하게 있을 때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비단 여자만 그럴까? 남녀노소 불문 편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 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고가의 가방과 코트는 예쁘지만 편히 쓰지 못하고 모시고 있는 입장이 되다 보니 항상 어색한 웃음이 번진다. 결국 아름다움과 패션은 충분조건은 성립되어도 필요조건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자 사기 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떨 땐 스스로 반성이 될 만큼 심한 쇼핑에도 남편은 단 한 마디도 쏘아붙인 적이 없었다. 그저 ‘입으면 예쁘지, 살 이유가 충분하지, 네가 제일 잘 어울리지.’ 하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네가 좋은 엄마로 겸이 강이 잘 보살피고 집안일 잘해줘서 벌어 주는 돈이 얼마인데, 그 정도 못 사주냐”는 말을 들었다. 내가 매일 나에게 해 주던 말을 남편의 입으로 듣게 되니 억울한 마음이 점점이 흩어져 갔다. 이래 두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는 걸까?


여전히 물욕이 많고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그 물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음을 안다. 대신 그 돈으로 경험을 사고 공유하는데 씀으로써 곁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유대하고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안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장원장이 최치열에게 ‘인간이란 원래 외로워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해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의지보다 같은 경험으로 유대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란 그저 겉으로 ‘나, 이런 거 살 수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드러내는 수단일 뿐, 진짜 나는 내 안에 채워진 많은 지혜와 사유들이 나의 언어로 넘쳐흐를 때 알 수 있는 복잡 미묘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안다. 나를 구석구석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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