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무시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세요.
<그림책으로 쓰담쓰담> 7회 차 탐색의 방
숨은 나의 능력을 찾아 떠나는 여행: 노를 든 신부
내적 동기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흥미, 호기심, 도전의식, 자기 만족감 등에서 비롯되는데,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들은 이런 내적 동기에 의한 활동이라고 합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훨씬 크고, 수행자가 자발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려운 과제에도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고 합니다. (쓰담이 P105)
‘외딴섬에 심심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심심하다. 친구들이 모두 신랑을 찾아 외딴섬을 떠났으므로 함께 놀 친구가 없다. 소녀는 결심한다. 신부가 되기로 말이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신부가 되어 섬을 떠나는 것을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딸의 결심을 환영하며 부모는 드레스와 아주 큰 노 한 짝을 준다. 거부할 법도 한데 딸은 주저하지 않고 드레스를 입고 노를 챙긴다. 소녀는 신랑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미련 없이 숲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늪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해주며 소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차라리 심심한 게 나은지도 모르겠어.’ 신부는 숲 속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소녀와 다른 아이였다. 부모가 입혀준 드레스와 노를 들고 부모가 일러둔 것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애를 썼다. 다른 길로 들면 안 된다는 강요를 어기지 못하고 신랑을 찾아온 섬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면 산 정상에 정박해 있는 호화로운 배에 올라탔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땅한 남자를 찾았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20대 때의 내가 바다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러지 못 한 삶에 아직 미련이 남는다. 갖고 싶었던 직업, 다니고 싶었던 여행, 배우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한 번도 해보지 못 한 채 여기까지 흘러온 나는, 경험이 없으므로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과 함께 야구를 했습니다.
타-악! 홈런 공이 끝없이 날아갔습니다. 오오! 사람들이 신부를 보며 환호했습니다.
소녀가 노를 들고 이것저것 경험하고 직접 부딪히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부럽다. 내 시간을 10년만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나도 내 손에 쥐어진 노를 들고 실컷 경험하며 나를 알아 갈 텐데. 그러나 과거의 나를 안타까워하며 살고 있기에 지금 내 눈앞에 흘러가는 시간이 버젓이 보인다. (돌아가도 그때의 나는 똑같이 살고 있겠지. 지금의 나는 그 시간들을 건너온 나이므로.) 이제는 그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진짜 나 혼자 결정하고 살아갈 시간들이 도래한 것이다. 소녀의 나이는 지났지만 나도 내가 가진 노를 들고 나를 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경제적 창출을 하지 못하는 나의 하고 싶은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녀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를 알아가는 경험을 해야 내가 가진 능력도 찾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경험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 문장에 의지하며 마음을 다지게 된다.
그림책 <<노를 든 신부>>의 신부는 우연히 만난 사냥꾼 덕분에 배를 젓는 노로 사람을 구하고, 사과를 따고, 곰과 싸우며 자신의 능력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숨어 있는 자신의 능력을 찾습니다. (쓰담이 P107)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쭉 생각해 본다. 고전 읽기, 글쓰기, 셀프 그림책 세러피, 우쿠랠래 연주, 그림 그리기, 테니스, 공부, 도서관 봉사. 참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일들을 해내며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몰입하고 집중하며 한 가지 일을 매듭짓는 힘이 크다는 것. 나의 초등학교 통지표엔 언제나 산만한 아이라는 평가뿐이었는데. 내향적이던 내게 학교는 언제나 어렵고 불편한 곳이었으므로 그런 평가가 아주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것으로 단정 지을 만한 인간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나 둘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는 이 많은 경험들이 언젠가 나의 능력도 찾아 주겠지? 그 능력을 찾을 때까지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휘둘려 생기는 회의와 불안을 접어두고 오직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오소리 작가의 <<노를 든 신부>>를 만나보길 권한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치를 쌓아가는 시간을 하대하거나 쓸모없는 일로 평가하지 않길 바란다. 일단 무엇이든 해 보길 권한다. 언젠가 그 무수한 경험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나의 능력을 찾아 홈런을 칠 날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