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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Apr 12. 2023

일곱 살, 서운함을 배우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요.

서운한게 뭔데?

화요일 아침 일곱 시 반. 클래식 fm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오늘을 맞이한다. 부득부득 우겨 3개월 주 3회 요가 수업을 끊었다. 일주일 두 번 테니스 레슨만 가지고는 운동량이 영 성에 차지 않아서다.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남편의 권유가 있었지만 공치는 맛을 알게 된 나는 테니스와 요가 둘 다 하겠다고 박박 우겼다. 결과는 개사태. 요가를 낮잡아 본 이유가 제일 크겠다. 기구가 다 잡아주는 덕에 코어에 힘만 주면 되는 필라테스와 달리 내 몸을 기구와 같이 고정하고 코어를 써야 하는 요가는 여간 어렵지 않다.


못 하니까 가기 싫다. 회원권 끊을 때 원장님의 표정을 인정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쓴 돈을 생각하니 안 갈 수 없다. 결국 싫은 마음을 구깃구깃 구겨 볼 수 없는 곳으로 던지고 아침을 차린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겸의 등교시간이 8시 20분까지라 나는 여덟 시면 겸과 함께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남편과 일곱 살짜리는 여덟 시가 되도록 꿈나라에 가 있다. 하지만 겸이 나갈 채비를 할 때면 남편은 어떻게 알고 일어난다.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정한 기상 시간의 마지노선. 부스스하게 일어나 눈도 못 뜬 채 배웅하고 바로 식탁으로 향한다. 이상하다. 신혼 때는 일어나자마자 밥 먹으면 큰 일 나는 사람이었는데. 십이 년 나와 함께 살더니 나처럼 먹으며 잠을 깨는 사람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어머님과 남편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강이 잔다는 것. 아침잠이 유난히 많아 일어나기 힘든 강을 그전에는 일어날 때까지 뒀다.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니 마냥 재울 수 없게 됐다. 등원은 남편이 시키지만 준비는 내가 시켜야 하니까. 겸을 배웅하자마자 급하게 강을 깨워보지만 오늘 아침도 결국 강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손녀가 당신 딸인 양 끼고 사시는 어머님도, 딸 앞에서는 인간이 되는 AI 남편도 모두 눈치라고는 밥과 함께 말아 드셨나 보다. 왜 항상 강이 일어나기 전에 밥을 다 먹어버리고 각각 화장실과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걸까? 아.. 정말 밉다, 미워!


내가 나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강을 식탁에 앉히며 말했다. “강, 엄마 요가 가야 해. 혼자 밥 잘 먹고 아빠랑 잘 다녀와!” 그러자 슬픈 눈의 강이 말했다. “엄마, 가지 마.” 워킹맘들은 이럴 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까. 돈을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요가 때문에 나가는 내게 과연 이렇게까지 가야 하냐고 자문했다. 하지만 물음표는 곧 느낌표로 바뀌었다. ‘자본주의 잉여인이 목돈 썼으면 몸이 부서져도 가야지!‘ 사랑을 담은 뽀뽀와 다정한 포옹으로 강의 마음을 정성껏 달래고 뛰쳐나갔다.

등원하는 강의 뒷모습.

유체이탈식 요가를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정신을 차리고 차에 시동을 걸려는 찰나, 양배추에게 전화가 왔다.“어머니, 강이 몸이 안 좋은지 등원하고 내내 누워만 있어요. 처음엔 머리가 아프다더니 배가 아프다고 하다가 지금은 어지럽다는데 열은 없거든요. 아침에 컨디션 어땠어요?” 순간 가지 말라던 슬픈 눈이 생각났다. “아, 양배추! 강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양배추는 강을 다시 살펴보시겠단다. 전화를 끊은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등원 당시 강의 상태를 물었다. ”강이? 밥도 다 먹고 기분 좋게 인사하고 등원했어요. “


내 예상이 맞았다. 지금 당장 강을 만나야 했다. 터전 앞에 도착하자 양배추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강이 자기 속마음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나 보다. ”어머니, 그냥 배만 아프다는데…” 집에 데려가 상태를 살피겠다며 내려 보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힘이 하나도 없는 강이 내게 와락 안겼다.


집에 돌아와 함께 목욕을 하며 물었다. “강, 아침에 혼자 밥 먹어서 외로웠어? 싫었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강이 엄마한테 가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가 가서 혼자 아침 먹어야 하니까 많이 서운했구나. 그 마음이 서운한 마음이야. 그런데 배는 또 고파서 밥은 다 먹은 거야?” 그랬더니 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아니라 마음이 허기져서 먹은 것일 텐데. 아직 일곱 살에겐 어려운 이야기다. “강아, 엄마가 우리 강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앞으로는 서운하게 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초승달 모양으로 접힌 눈꺼풀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밤하늘 별보다 예쁘게 반짝인다.

돈까스 댁에서 서비스로 보내 준 환타.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시장하시다고 난리다. 밥을 차려 먹이고 싶은데 이럴 땐 전기밥솥 버린 내가 원망스럽다. 급하게, 먹고 싶다는 치즈돈가스와 가락국수(라 쓰고 우동이라 읽는다.)를 배달시킨다. 환호하며 야무지게 먹는 강. 숟가락을 내려 놓자마자 동실동실 부른 배를 내밀고는 욕망에 가득 찬 미소를 날리며 한 마디 한다. “엄마, 산타는 누가 마실 거야?”


강아, 환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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