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글이 May 14. 2023

학교 밖 교실

자연 속에서 나를 배우는 날

푸른 산 쪽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

오랜만에 뜨거운 5월의 별빛과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혼재하는 아름다운 카오스 속에 앉아 새로 태어난 초록의 생명력을 누린다. 서늘한 바람이 내 품을 파고들어 으슬으슬하지만 볕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이 오묘한 계절이 좋다. 하늘에는 흐릿하게 뭉쳐진 수증기가 뜯긴 솜뭉치처럼 걸려 꼼짝을 하지 않고 저 멀리 보이는 산, 깊숙한 곳에서는 이름을 몰라 알아줄 수 없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어린이 도서 연구회(이하 어도연)에서 준비한 ‘학교 밖 교실’ 행사에 참여한 덕분에 우리 집 어린이들은 자연 속에서 신나게 세상을 배우고 있고 우리 부부는 차경이 멋진 카페테라스에 앉아 조용히 세상을 듣고 있다.

행사는 오직 어린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43년 동안 평교사로 지내시다 퇴직하신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이끌어 주신다. 대중 강연 때 처음 뵈었던 선생님의 강직한 신념과 철학이 존경스러워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주셨으면 싶었는데. 마침 바로 ‘학교 밖 교실’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신청했다.

오빠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강

하지만 생각보다 낯가림이 심한 강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못할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떨어지기 싫다며 내 팔에 매달려 불안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피는 강. 그런데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오늘의 규칙을 설명해 주시니 나를 밀어내고 선생님에게 뛰어간다. 역시 ‘사람 보는 눈 하나 기기 막히네’ 싶었다.

차경이 멋진 테라스레서 만난 존

아이들이 오전에 물레질을 하는 동안 어도연의 신입 회원 공부 모임 첫 발제자를 자청한 나는 ‘지각대장 존’을 꺼내 본다. 원서의 존은 배우기 위해 길을 나선다. 하지만 번역서에서는 학교에 간다고 되어 있다. to learn 이란 텍스트만 있는 원서를 왜 굳이 ‘학교로 간다’는 사족을 붙여 번역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모든 배움이 당연히 학교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각대장 존’의 존은 존 버닝햄 자신으로 그는 학교보다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음을 그림책으로 들려준다. 나도 그의 의견에 수없이 많은 느낌표를 던지며 동의를 표한다. 학교는 배움의 장, 그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면서.​


오전 일정을 끝내고 점심을 먹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찾아오셨다. 겸이 가진 창의성과 예술성이 예사가 아니라고 극찬하시며 ‘겸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수업 시간을 겸이 다 이끌어가고 제가 보조만 맞춥니다.’라는 소리 정도만 들었는데. 남편은 선생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 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5월의 자연 그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배우는 겸과 강은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마음에 담아 올까.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반갑게 맞이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메리 포핀스가 붙이고 간 것 같은 구름과 해.

볕이 더없이 좋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과 현실 사이, 예의를 놓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