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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May 20. 2023

마상 입은 지질한 아들 이야기

아들, 너의 지질함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어제 친구와 포켓몬 고(이하 포고)를 하겠다며 나갔던 겸이 기분 안 좋은 얼굴로 도서관에 돌아왔다. 숨기고 있는데 안 숨겨지는 그 표정. 대뜸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겸연쩍은 미소로 아니라고 답하며 신간 코너에 가 책을 빼 들었다. 그런 겸의 뒤통수를 눈으로 좇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봉사하는 선생님 전화였다.

너에게 포고는,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

“어, 그래. 응, 하기 싫었구나. 그래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 그래 알았어, 잘 다녀와.”


둘이 게임을 하고 오겠다고 했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나는 속삭이듯 여쭸다.


“싸웠데요?”

“응, 싸운 건 아닌데 서로 의견이 좀 달랐나 봐.”

“아, 겸이 좀 조를 때가 있어요, 잘 얘기해 볼게요.”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겼던 친구가 못하겠다고 하니 겸이 졸라댔을 테다. 휴… 한숨이 난다.


“겸, 왜 기분이 안 좋아?”

“어,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 친구가 먼저 학교 마치고 포고를 같이 하자고 했어. 그래서 학교 마치고 근린공원에서 만났거든. 그런데 갑자기 전화받고 어딜 가더니 한참을 안 왔어.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더니 나 보고 4단지 놀이터로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갔더니 같이 놀자고 했어. 나는 포고가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내가 졸랐어. 그랬더니 ‘왜 네가 하자는 대로만 해야 돼.’ 하면서 화냈어. 그래서 레이드 한 판만 해달라고 해서 친구가 해주기는 했어. 그런데 나는 속상하고 기분이 안 좋아.”


자기주장이 강한 겸은 때로 자신의 주장을 완고하게 관철시킬 때가 많고 이럴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답답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겸, 많이 서운하고 속상했겠다. 그런데 이럴 때 한 번 정도는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싫다는 친구한테 네 의견을 강요할 수는 없어. 세상에 네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 뿐이야. 친구도 자기 생각과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네 부탁을 다 들어줘? 좋은 관계라면 존중해 줄 줄 알아야지. 그리고 걔가 네 친구지 엄마 아빠도 아닌데 왜 졸라댄 거야? 서운하다는 마음은 표시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나는 포고가 하고 싶었고 같이 하기로 했는데… 같이 할 친구가 없었단 말이야.”


지질한 겸의 모습에 화가 난다. 같은 이야기를 백번 정도 반복 하고도 분이 안 풀린다.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서, 관계를 구걸하고 다닌 내가 겹쳐 보여서 더 화가 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친구의 의견도 존중해 줘.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부탁을 들어주면 그래서 고마운 거야. 알았어?”

“응….”



이 날도 포고 때문에 솜사탕 뒤로 얼굴을 숨겼지.

그렇게 어제저녁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한숨을 푹푹 쉬며 잠이 들었던 우리 모자. 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는 겸의 얼굴을 보니 문득 도서관에서 마주한 얼굴이 떠 올랐다. 겸은 친구 엄마가 있는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속성하고 억울한 마음을 하나도 토해내지 않고 있었다. 그 대견한 마음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욱신했다.


‘그래도 나름 친구 엄마 앞에서는 흉 안 보려고 애썼는데. 그건 봐주지도 않고 내가 너무 애를 잡았구나.’


가만히 얼굴을 쓰다듬으며 끌어안았다. 품으로 파고드는 커다란 머리가 품에 가득 찬다. 잠시 후 잠이 깬 아들에게 물었다.


“겸아, 어제 도서관에서 왜 바로 말하지 않은 거야?”

“어, 좋은 일도 아니고 친구 엄마가 들으면 곤란할 것 같고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고마워, 아들. 잘 참아 줘서. 엄마가 그건 알아주지도 않고 막 다그쳐서 미안해.”


그래도 한 마디 놓칠 수 없다.


“아들, 그래도 친구한테 떼쓰고 강요하면 안 돼.”

배시시 웃으며 “어”라고 대답하고는 얼른 일어나 방을 나간다.


잔소리 듣기 싫은 거지?




친구에게 물었더니 "지질하게 살아봐야 고매해질 수 있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지질함에 자꾸 나의 어릴 적, 아니 지금도 지질한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참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래도 분리시켜야지. 이제 아이 옆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애들이 많이 컸잖아."


맞다.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의 질풍노도가 자신의 삶을 잡아먹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춘기 부모가 갖춰야 할 자질을 갖추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 최대한 나와 분리 시키고 친구에게 조언하듯 다정한 온도로 말을 건네 줘야지. 아이의 지질한 시간에도 한결같은 사랑을 퍼부으며 같이 잘 버텨 주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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