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너의 지질함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어제 친구와 포켓몬 고(이하 포고)를 하겠다며 나갔던 겸이 기분 안 좋은 얼굴로 도서관에 돌아왔다. 숨기고 있는데 안 숨겨지는 그 표정. 대뜸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겸연쩍은 미소로 아니라고 답하며 신간 코너에 가 책을 빼 들었다. 그런 겸의 뒤통수를 눈으로 좇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봉사하는 선생님 전화였다.
“어, 그래. 응, 하기 싫었구나. 그래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 그래 알았어, 잘 다녀와.”
둘이 게임을 하고 오겠다고 했는데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나는 속삭이듯 여쭸다.
“싸웠데요?”
“응, 싸운 건 아닌데 서로 의견이 좀 달랐나 봐.”
“아, 겸이 좀 조를 때가 있어요, 잘 얘기해 볼게요.”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겼던 친구가 못하겠다고 하니 겸이 졸라댔을 테다. 휴… 한숨이 난다.
“겸, 왜 기분이 안 좋아?”
“어, 점심시간에 만났을 때 친구가 먼저 학교 마치고 포고를 같이 하자고 했어. 그래서 학교 마치고 근린공원에서 만났거든. 그런데 갑자기 전화받고 어딜 가더니 한참을 안 왔어.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더니 나 보고 4단지 놀이터로 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갔더니 같이 놀자고 했어. 나는 포고가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내가 졸랐어. 그랬더니 ‘왜 네가 하자는 대로만 해야 돼.’ 하면서 화냈어. 그래서 레이드 한 판만 해달라고 해서 친구가 해주기는 했어. 그런데 나는 속상하고 기분이 안 좋아.”
자기주장이 강한 겸은 때로 자신의 주장을 완고하게 관철시킬 때가 많고 이럴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 답답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겸, 많이 서운하고 속상했겠다. 그런데 이럴 때 한 번 정도는 같이 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싫다는 친구한테 네 의견을 강요할 수는 없어. 세상에 네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 뿐이야. 친구도 자기 생각과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네 부탁을 다 들어줘? 좋은 관계라면 존중해 줄 줄 알아야지. 그리고 걔가 네 친구지 엄마 아빠도 아닌데 왜 졸라댄 거야? 서운하다는 마음은 표시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나는 포고가 하고 싶었고 같이 하기로 했는데… 같이 할 친구가 없었단 말이야.”
지질한 겸의 모습에 화가 난다. 같은 이야기를 백번 정도 반복 하고도 분이 안 풀린다.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여서, 관계를 구걸하고 다닌 내가 겹쳐 보여서 더 화가 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친구의 의견도 존중해 줘.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부탁을 들어주면 그래서 고마운 거야. 알았어?”
“응….”
그렇게 어제저녁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한숨을 푹푹 쉬며 잠이 들었던 우리 모자. 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는 겸의 얼굴을 보니 문득 도서관에서 마주한 얼굴이 떠 올랐다. 겸은 친구 엄마가 있는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속성하고 억울한 마음을 하나도 토해내지 않고 있었다. 그 대견한 마음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욱신했다.
‘그래도 나름 친구 엄마 앞에서는 흉 안 보려고 애썼는데. 그건 봐주지도 않고 내가 너무 애를 잡았구나.’
가만히 얼굴을 쓰다듬으며 끌어안았다. 품으로 파고드는 커다란 머리가 품에 가득 찬다. 잠시 후 잠이 깬 아들에게 물었다.
“겸아, 어제 도서관에서 왜 바로 말하지 않은 거야?”
“어, 좋은 일도 아니고 친구 엄마가 들으면 곤란할 것 같고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고마워, 아들. 잘 참아 줘서. 엄마가 그건 알아주지도 않고 막 다그쳐서 미안해.”
그래도 한 마디 놓칠 수 없다.
“아들, 그래도 친구한테 떼쓰고 강요하면 안 돼.”
배시시 웃으며 “어”라고 대답하고는 얼른 일어나 방을 나간다.
잔소리 듣기 싫은 거지?
친구에게 물었더니 "지질하게 살아봐야 고매해질 수 있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지질함에 자꾸 나의 어릴 적, 아니 지금도 지질한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참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그래도 분리시켜야지. 이제 아이 옆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애들이 많이 컸잖아."
맞다.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의 질풍노도가 자신의 삶을 잡아먹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춘기 부모가 갖춰야 할 자질을 갖추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 최대한 나와 분리 시키고 친구에게 조언하듯 다정한 온도로 말을 건네 줘야지. 아이의 지질한 시간에도 한결같은 사랑을 퍼부으며 같이 잘 버텨 주는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