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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May 22. 2023

어린이가 놀이터를 만날 때

각본 없는 서사가 펼쳐지는 곳

엎어진 커다란 돔 사이사이 촘촘한 밧줄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유연하고 자그마한 어린이들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촘촘함. 그 그물 위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있다.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높이가 어른들은 아찔하기만 하다. 귀한 내 새끼, 떨어지면 어찌하나 불안한 눈을 거두지 못하고 아래에서 서성이며 떨어지는 모래만 한없이 맞고 서 있다.

세종시 땀범벅 놀이터 랜드마크

그러나 몇 해를 다녀도 그곳에서 떨어진 어린이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그물 위 아이들은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그곳에 매진하고 있으니까. 올라가는 어린이들은 아래의 친구가 다치지 않나 살펴보고 있고 아래에 있는 어린이들은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일부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의 남자 어린이들이 아래, 위 살필 겨를 없이 위로만 향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손을 밟거나 밀치지 않는다.

몇 달 전만 해도 못 오르던 강이 로프와 한 몸이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다. 어른들의 눈에는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고 언제 누가 떨어진들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어린이들은 암묵적인 질서와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가지고 정온하게 목표를 향해 오른다. 제일 꼭대기에 이르면 그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보인다고 하니 못해도 10m는 되는 높이에 서서 어린이들은 뿌듯함을 느낀다.

생생한 드라마가 실시간 펼쳐지는 현장

이제 내려올 차례. 미끄럼틀의 경사가 제법 가팔라 초기에는 탈 수 있는 어린이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물에 누워있거나 오른 그물로 다시 내려갔다. 하지만 놀이터의 역사가 흐를수록 ‘좀 놀아 본’ 어린이들이 많아질수록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어린이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쟤가 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의심이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연습 삼아 한 번 내려온 뒤에 꼭 엄마나 아빠를 불러 앉혀 놓는다. 미끄럼틀이 끝나는 그곳에.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려와 엄마, 아빠에게 달려온다. 부모는 세상 반갑고 대견한 표정으로 어린이를 맞으며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준다.

닐다람쥐처럼 오르는 강

어렵고 지난한 그물을 버티고 가파르고 어두운 미끄럼틀을 견뎌낸 어린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필요한 덕목들을 배운다. 자신의 선택에 불안 대신 용기를, 알 수 없는 결과에 두려움 대신 기대를 안고 오르내리는 어린이들의 태도에서 말이다.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고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이 각본 없는 서사를 지어내는 어린이들은 훗날 어떤 어른이 될까? 그 어른들을 만날 그날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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