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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May 27. 2023

내안의 아이가 울고 있는 이유

버림 받을 것이 불안해서

목요일 밤 남편의 뒤통수를 마사지해 줬다. 정확하게는 목과 뒤통수가 시작되는 뒷덜미, 볼록 솟은 뼈 아래 풍지혈이라는 자리다. 이곳을 살살 풀어주면 뇌로 가는 혈액의 순환이 잘 되고 눈이 맑아진다고 한다. 올해 초 연구원 전략기획팀장이 된 남편은 그것과 별도로 본업인 과제 책임자도 계속 맡아야 하는 처지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날도 지쳐 돌아온 얼굴이 내내 마음에 걸려 주먹 쥔 맨 손으로, 한 20분 문질렀나 보다. 남편이 시원해서 좋다며 헤벌쭉 웃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안도가 되었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니 손가락이 아팠다. 시력이 어중간하게 나빠 안경은 멋 낼 때랑 책 읽을 때만 쓰는 나는 손가락에 무슨 일이 났는지는 잘 보지 못 한 채 아파서 끙끙 대며 도시락을 쌌다. 오늘은 학비 노조 파업으로 급식이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퉁퉁 부어 오른 손과 뜨지 못한 눈으로 계란 볶음밥을 준비한다. 불에 덴 것처럼 신경을 긁어대는 통증. ‘이번엔 대상 포진이 손가락에 온 건가? 어제 그 마사지 한 번에 류머티즘 관절염이 생긴 건가?’라는 과대망상을 한 아름 품고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장미들

날씨가 좋았다. 도처에 퍼져있는 햇살냄새 위로 이따금 바람에 실려오는 달콤한 장미향이 겹쳐 날카로운 신경을 어루만졌다. 눈부신 5월의 아침을 걸을 때면 잠자고 있던 충만함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다. 행복한 발걸음으로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행정실로 향한다. 받아 온 열쇠로 문을 열면 밤새 갇혀있던 학교 도서관의 무겁고 습한 공기가 ‘여기서 내 보내줘!’라고 말하며 달려든다. 얼른 사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개운한 바람에 무거운 공기를 실어 보낸다.

그림책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을 보면 매년 4월, 새로운 바람이 탄생해 이듬해 3월까지 활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계절이 된 것일까? 부드럽게 휘감아 황홀한 기분을 선사하는, 태어난 지 2개월 차 5월 바람의 기운이 나는 참 좋다. 마침 급식 파동으로 주방 환풍기도 다 꺼져 있는 바람에 열어둔 창문으로 웅웅 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픈 손가락

하지만 잠깐이었다. 행복에 취해 있는데 별안간 손가락 마디에서 또 통증이 요동친다. 아니, 어쩌면 통증을 모른 채 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와 이래 아프노?’ 속으로 말하며 손가락과 대면해 보니 벗겨진 살갗이 보였다. 그리고 옆으로 빠알갛게 드러난 생살이 자기 존재를 알린다. 아무래도 아침에 흐리게 뭔가 보이던 것이 물집이었나 보다. 어쩌지 밴드도 약도 없는데.​




가끔 나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꿈을 선명하게 꾼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는 날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우울하고 남편이 괜히 죽도록 미웠다. 단 한 번,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적 없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산다는 걸 수없이 말하는 남편임에도 그런 꿈을 기억하며 눈을 뜨는 날이면 몇 날 며칠을 우울해한다. 이런 꿈을 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었고 터지는 분노와 불안은 죄 없는 남편이 매번 다독여 줘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하늘은 분명 있는 것 같다. 몇 년째 참여하고 있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 “그림책 테라피 북클럽”에서 읽게 된 책이 나를 구제한 것이다. 책 “감정의 성장”에서 저자는 우리 안에 핵심감정 즉, 수용받지 못해 무의식의 저편으로 밀어 넣어 둔 어린 시절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알아차린 그 핵심 감정을 잘 다루며 나를 다시 키워내는 작업을 “감정의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책의 시작과 끝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나의 근원적 불안이 유기불안임을 깨달았다. 내 속에는 사랑을 갈구하며 버림받을 것이 두려운 아이가 있었다. 언제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은 없다고 스스로를 폄하하고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불같이 화내고 늘 관계에서 먼저 떠나버리던 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파편적이던 삶의 조각이 낱낱이 맞춰지며 맥락이 형성되고 이해가 일어나던 날, 그토록 외면하고 싶던 내면의 아이와 떼어내고 싶던 그림자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늘, 통제와 체벌로 자율성을 완전히 꺾고 마리오네트처럼 나를 키운 부모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였고 언제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들통날까 봐 염려하며 긴장된 상태로 살았다. 억지스럽게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려 했던 나는 그래서 꿈을 꾸는 듯 들떠 있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막내처럼 보였고, 낙천적인 인간으로 보였다.​


내 안의 아이는 늘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내’가 되기를 요구했다. 예쁘고 똑똑해야 하며 누군가의 아픔을 무시하지 말고 설령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랑받기 위해 무조건 노력하라고 몰아세웠다. 또한 꿈속에서 ‘바람피우는 남편’이라는 불한당을 만들어 내고 손가락에 물집을 만들어 터트리는 근원이었다.


하나만 들기 공교로운 중지 손가락을 치켜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노안이 온 남편은 얼굴에서 손가락을 멀리 떼어내며 들여다보았다. 상처를 발견한 눈이 화등잔만 해지며 목요일 밤, 아내의 손길이 시원하다며 행복해하던 자신을 탓하는 눈치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겸이 그린 자화상.건강한 마음으로 자신을 만나는 어른이 되길.
 여러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롭습니다. 어떠한 조건도 필요하지 않아요. 오직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상담심리학과 교수님께서 수업 때마다 온화한 표정으로 해 주시는 말씀이다. 내게는 서울대 출신에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이룬 교수님의 후광에 빛바랜 이야기처럼 들렸다. “쳇! 교수님이야 이것저것 다 이루셨으니까 그런 생각이 쉽겠죠!”라고 혼자 구시렁거리며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수업 중간중간 들려주시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근원적 불안을 마주하며 이제는 의심 없이 동의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존재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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