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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un 23. 2023

나도 한 때는 잘 했지

안 쓰니까 다 잊어버렸다고 변명하는 꼰대

도서관을 찾는 예쁜 아이들

학교 도서관에 출근하는 금요일이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아이들이 있다. 내게 편지를 건네었던 아이와 겸이의 친구들 그리고 따니아. 따니아는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으로 작년에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동네 특성상 귀국반이 잘 되어 있어 외국인들도 많은 편인데 따니아도 그중 한 명. 큰 눈에 옅은 갈색머리 예쁜 브라운톤의 따니아는 어느 날부터 금요일 오후에 온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노는 아이들이 많은 이곳에서 서툰 영어를 쓰는 내가 좀 부끄럽지만 왕년에 영어 영재라고 인정받은 “라테”를 배후로 유창한 척 애쓰는 나를 좀 알아본 것 같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where are you from?을 외쳤다. Mexico. 따니아는 멕시코에서 온 아이였다. 그곳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까? 한글은? 감사합니다 정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따니아는 영어도 유창한 편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게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혼자 다니는 건가?


따니아가 Is there a book of 프런치?라고 물어왔다. 프런치? 브런치? 무슨 말인지 몰라서 Can you write it on the paper?라고 묻자 흔쾌히 Yes! 를 외친다. 그런데 쓰는 것이 영 자신이 없어 보인다. 쓰고는 얼른 쓱쓱 그어버렸다. franch라는 단어를 써놨다. oh you wanna book of france!라고 하니 얼굴이 환해지며 맞다고 답했다.


영어 서가는 청구기호별로 책이 꽂혀있지 않아 있는 책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따니아는 한글로 된 책도 괜찮다며 번역기로 돌려 보겠다고 했다. 나는 한글책의 지리 서가 쪽으로 갔다. 마침 아이들이 즐겨보는 여행 책자들이 있었고 따니아는 거기서 이탈리아 책등을 보고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따니아는 책을 들춰보며 이번 여름 방학 때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파리 책을 찾아 주니 환호하며 두 권을 빌리겠다는 따니아. 그런데 급격하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따니아는 지난번에 빌린 책이 연체가 되어 대출 금지 기간이었던 것. 그걸 알고 있었던 나는 빌려 줄 테니 대신 꼭 늦지 않게 반납할 것을 약속하자고 했다. 따니아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를 유창하게 말하며 90도로 절을 했다.


집에 와서 i envy you를 찾아봤다. 아까 따니아가 프랑스에 간다고 해서 increadible과 함께 i envy you라고 말했는데 언뜻 envy라는 단어를 안 쓴다고 본 적이 있어서다. 역시 i’m jealous!라고 써야 한단다. 영재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영재! 이래서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내새우면 꼰대가 되는건가 보다.


여름 방학엔 공부하자, 영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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