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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Jul 02. 2023

병이라는 죄값

엄마도 결국 사람이므로

워낙 아파도 열은 나지 않는 특이한 체질의 나는 몇 년 전 폐렴으로 4박 5일 입원할 때도 체온은 0.1도도 오르지 않았다.

2016년 겸에게 편지쓰듯 썼던 병상일지.

한 달 동안 발작성 기침으로 잠 못 이뤘음에도 병원 가는 걸 미뤘다. 마침내 내가 진단을 받은 이유는 겸이 독감으로 입원했을 때 걱정하며 등 떠밀어 준 간호사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엄마, 큰일 났다, 당장 입원해!라고 했고 나는 우리 아들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제가 어떻게 입원하냐며 웃으며 말했다. 겸이 옆에서 수액을 맞으며 버티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날 새벽, 혼자 응급실로 가서 입원했던 날도 내 체온은 정상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들은 코로나로 열이 40도까지 오를 때도 나는 38도에 바닥을 기어다녔다. 호르몬으로 인한 배란기의 미열도 버티기 힘들다. 지금이 딱 그 힘든 상태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36.8도 안 먹으면 37.5. 딱히 어디 아픈 곳은 없는데 열 때문이 두통이 심하니 며칠 진통제로 근근이 버텼다.

코로나 전 2019년 통원 치료 하며 남긴 기록.

몇 년 전, 소변도 잘 못 보고 등쪽 옆구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서 초음파를 봤을 때 신장이 부어 있다고 했다. 소변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지만 신우신염이라 진단되었고 일주일 치료받은 뒤 포진이 올라와 내 병명은 대상포진이 되었다.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아픈 옆구리 통증으로 최근 나의 건강 상태를 돌이켜 보았다. 부종과 발열, 옆구리 통증. 그 때와 비슷한 것으로 보니 신장이나 방광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땐 소변을 못 눴는데 지금은 그 지경은 아닌 걸 보니 대상포진은 아닌가 보다.)


순진하고 순수하고 단순하기 끝이없는 11살 어린이들. (왼) 루프탑 풀에 초대 받은 강. 물놀이하기 더없이 좋았던 오늘. (오)

겸과 겸의 친구들과 약속한 파자마 파티가 오늘인데. 강이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야 하는 날도 오늘인데. 하필 토요일 오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점심을 먹기 직전에 나의 몸 상태를 겨우 인지한 바람에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내 상황 설명을 하는 것만큼 따분한 일도 없고. 그래서 나는 타이레놀을 붙잡고 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치킨을 이긴 볶음밥. 이 맛에 밥하지만.

저녁 메뉴로 볶음밥을 준비했는데 겸의 친구들이 맛있다고 두 그릇 세 그릇씩 먹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잠자리를 봐주고 불을 끄니 어둠 속에서 놀기 시작했다. 누가 시작했을까?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명불허전 아이들의 공동체 놀이인가 보다. 추억 돋는 멜로디에 나도 끼여 낄낄대며 게임을 했다. 옆구리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노는 건 못 참지.​




무리하면 신장에 병이 생긴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야 했는데. 병이란 건강한 동안엔 편히 잊고 ‘열심히’ 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주제넘게 체력을 남용한 죗값다. 그래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그래서 오전에 진료를 봤다면 좋았을 텐데. 통증에 무지한 것은 나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어쨌든 하루는 더 버텨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 핑계로 또 무리를 강행한다.

아프기 시작하니 엄마로 살기 이전에 나로 바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엄마들이 엄마 이전에 ‘나’로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이기적인 일이 아님을 마주 앉은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 해 본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고 난 이후 나는 내가 제일 뒷전이었다. 한 달 넘도록 기침을 해대며 잠 못 이뤘음에도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는 것을 미루었다. 처음 소아과에서 진료를 볼 때 의사의 반응에 웃으며 답한 이유도 나보다 아이가 우선인 “멋진 엄마”라는 자아도취 때문이었다.

신장에 이상이 있었을 때도 둘째를 핑계로 일주일을 참았다. 진통제로도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만난 의사는 엄마 몸이 이 지경인데 아기를 어떻게 보느냐며 입원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때도 둘째의 안위가 더 우선이었고 이틀에 한 번 수액을 맞는 통원치료를 감행했다. 남편도 의사도 손 쓸수 없는 내 고집이었다.

그렇게 지나오며 내린 결론들이 있었다. 아플 때까지 몸을 마르고 닳도록 쓰면 안된다는 것 하나, 그리고 결국 아플 땐 주위 도움을 받으며 쉬어야 한다는 것 하나. 그것은 폐를 끼치는 일도 미움 받을 일도 아니다.

© jessicarockowitz, 출처 Unsplash
절대 아프지 않고
몸과 마음이 무조건 건강한
태어날 때 부터 엄마

‘엄마 인종’ 이 따로 있다. 그 사람들만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자신의 쉼이나 일상보다 아이들이 우선이다. 아파도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그 인종은 오직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사정과 열일을 제치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무조건 사활을 걸며 살아야 하는 ‘엄마 인종’ 이다.


‘엄마 인종’이 따로 정해져 있다면 나같은 자아도취도 미련하게 보이지 않을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는 세상에 엄마 인종은 없다. 나도 그런 인종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맹모나 신사임당 같은 모성 신화를 강조하며 ‘엄마 인종‘을 만들어 내고 집에서 놀고 먹으며 애나 보는 주제에 돈주고 카페에서 커피 사마신다며 ‘엄마유감’을 표출한다.


나도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배우며 자랐다. 맘충이란 단어를 들은 뒤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먹을 때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눈치를 봐댔다. 피곤해도 끼니 때면 기를 쓰고 집밥을 했다. 두 아이 모두 18개월까지 완모, 이유식은 홈메이드. 아이가 아프면 최소한의 잠을 자며 곁을 지켰다.


그 결과로 매번 병을 얻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더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매몰차게 굴었다. 이번에도 시험이 끝난 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시험기간 동안 주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보상하겠다는 욕심이 병을 불러왔다. 그렇다고 매번 기분 좋은 상태도 아니었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애들에게 짜증을 더 많이 낸 듯 싶었다. 이런 내 모습을 쭉 훑어보며 오늘에서야 인정한 것이 있다. 엄마도 사람이므로 엄마 이전에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쉼과 돌봄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치료 받아 건강해지면 다시는 건강을 담보로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나를 위한 공부던 아이들을 위한 약속이던 그 무엇도 ’나‘라는 사람 앞에 있을 수 없다. 내가 건강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앞, 뒤, 양 옆을 돌아보며 보살필 수 있음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으니까.


버티는 동안 나의 신장이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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