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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Jul 04. 2023

너와 나의 불청객

생일달이면 찾아오는 여름감기를 앓는 너에게

넌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 분명 터전에서 널 다시 만날 때 만해도 괜찮았는데. 저녁 먹을 즘 넋을 놓은 네 이마를 짚어 보니 불덩이다. 매년 생일달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여름 감기가 너를 또 찾아왔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목이 많이 말랐는지 포도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식사로 준비한 쌀머핀은 먹질 못 했다. 마시는 것이라도 먹자며 나는 영양제도 한 컵 주고 포도 주스도 다시 따라줬다.


간밤에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안 가는 일이 생각나서 물었다. 엄마가 새벽에 강이 해열제 먹였어? 응. 그랬구나, 그런데 다시 열이 오르는 것이구나.


아침 일찍 연락해야 할 곳들에 연락을 하고 병원을 알아본단 핑계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동안 네가 울었다. 막 달려가 달래려는데 겨우 먹은 주스들을 울컥울컥 토해냈다. 화장실로 얼른 옮겨 주니 거기서도 몇 번을 더 토해냈다.


보랏빛으로 물든 이불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괜찮다고 너를 토닥였지만 사실 겁이 나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계속 우는 너를 안아 달래며 수없이 되뇌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말끔히 닦아주고 옷을 입히고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세수할 시간은 없으니까 그냥 선크림을 바르며 나를 최대한 챙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마음을 품고 너를 마주하는 미련한 엄마는 되고 싶지는 않음으로.


다행히 아직 비가 오지 않았다. 병원 가까이에 이면 주차도 할 수 있었다. 주차 단속에 걸리는 건 운명에 맡기고 그렇게 병원으로 향한다. 독감이니 코로나니 요즘 다시 너무 많아졌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착잡해지는 마음을 달랠 방도가 없다. 받은 처방전에 쓰인 약의 종류가 너무 많아 간호사 선생님들도 나도 깜짝 놀랐다.

잠깐 열이 내렸을 때 얼른 점심이라도 먹여야 했다. 네가 좋아하는 치즈를 넣어 만들어 줄 테니 오믈렛을 먹자고 했다. 흰 죽 끓여 달라던 너는 치즈에 마음을 바꿔 먹었다. 처음 만든 오믈렛은 생각보다 모양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네 건 성공 내 건 실패. 나는 스크램블 에그로 먹고 너는 오믈렛을 먹었다. 같은 재료로 모양만 다를 뿐인데 이름이 왜 달라질까,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다시 열이 오르고 이렇게 누워있는 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이제 겨우 발열 20시간째이니 앞으로 24시간이 고비일 텐데 자꾸 겁이 덜컥나고 안 좋은 생각이 나고 마음이 약해진다.


나는 달콤한 맛은 속을 니글거리게 만드는 부작용 때문에 멀리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걸 이겨내고 달콤함에 의지해 보려고 한다. 달콤함이 우리 기분을 오르락 내리락 하게 만든다 하지. 네 몸 속 상세불명의 염증과 싸우고 돌아온 너를 웃으며 맞이해 주고 싶으니까 설탕의 힘을 빌어 나는 올라가 있어 보려고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괜찮다는 말을 되뇌이며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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