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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Jul 07. 2023

슬기로운 입원 생활 (2)

한꺼번에 쳐들어 온 네 개의 바이러스

호흡기 바이러스 검사 결과 네 개의 바이러스가 양성으로 확인되었다. 아데노, 폐렴구균, 수막구균, 리노. 강의 몸속에서 바이러스 네 개가 땅따먹기 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들이닥치기도 하는구나, 또 하나 배우는 나는 죽을 때까지 초보 딱지를 면치 못 할 엄마다.


하지만 정작 강과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기침도 가래도 콧물도 아니다. 바로 설사. 성인이 먹는 지사제를 쓰고 있음에도 어제 밤새도록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강은 변기에 앉아 어떡해야 하냐며 펑펑 울었고 나는 그런 강을 안쓰럽게 보는 수밖에 별 방도가 없었다.


4인실을 쓰고 있는 우리는 화장실 문을 한 번 여닫을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눈치를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결국 버티지 못했다. 집에서 가져온 이불을 가지고 복도로 나와 환아용 유모차에 뉘어 강을 재웠다. 야심한 새벽 두 시의 복도 화장실은 눈치 보지 않아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으니까.


그렇다 해도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릴 수는 없었으므로 간호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구했다. 죄송하지만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약이 없을까요?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못 자고 있어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혼자 하는 야간 근무의 강도가 높아서일까? 기계적으로 나를 대하는 간호사 선생님은 기저귀를 채우라고 했다. 나에게 줄 수 있는 기저귀도 없으면서. 순간 치미는 화를 삼키며 약을 더 달라고 청했다. 겨우 얻은 유산균 한 봉 덕분이었을까. 강의 장이 좀 잠잠해졌는지 작은 유모차에서 정신없이 잠든 강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새벽 세시, 함께 방을 쓰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모녀는 유죄였다.


야간 근무하는 간호사 선생님께 1인실 예약을 다시 걸어두었기 때문에 오전에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강이 그 말을 듣고 싫다고 울기 시작했다. 4인실의 어느 누구의 얼굴도 마주 한 적 없지만 아무래도 혼자 쓰는 방의 적막이 싫은 것 같았다. 비용도 만만찮아 이래저래 고민이었는데 차라리 잘된 건가 싶었다. 그래 그냥 버티자. 내일은 더 괜찮아지겠지. 염치없이 나는 자리에 다시 눌러앉았다.


아침저녁 두 번 꼬박꼬박 항생제 주사를 맞고 소염 진통제와 발작성 기침을 진정시키는 약도 넣으며 바이러스가 일으킨 염증을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장은 여전히 문제다. 스스로 나아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회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이 흰 죽이나 쌀밥이 배 아픈 걸 낫게 해 주고 설탕 잔뜩 든 군것질은 더 아프게 한다고 강에게 일러주셨다. 낯가림이 심한 강은 안 듣는 척했지만 매 끼니 흰 죽을 성실하게 마주하며 먹으려고 애쓴다. 안 넘어간다고 가슴을 탕탕 쳐가며 간신히 삼킨다.


그럼에도 강은 간간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좀 살 것 같으니 먹고 싶은 것이 자꾸 눈에 들어오니까. 하지만 퇴원할 때 다 사가자는 엄마의 희망고문에 아이는 또다시 일어난다. 일곱 살 주제에 왜 이렇게 단단한 건지. 아이와 함께 무너지고 일어나며 지난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자신은 이번 주 일요일부터 일주일 휴가라 못 볼 테지만 일단 화요일까지 퇴원 못 한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이 엄청나게 야속하다. 늦어도 일요일엔 퇴원하겠지 싶어서 1인실도 염두했던 것이었는데. 숙박업을 하시는지 1인실 일박이 25만 원인데 겁 없이 옮겼다면 펑펑 울 뻔했다. 1인실이 싫다고 울어준 강이 여러모로 참 고마운 밤이다. 내일은 좀 더 건강해 지기를! 코 고는 강을 옆에 두고 간절한 마음을 모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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