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들(thought)을 유의미한 형태(form)로 만드는 과정
studio fnt는 최근 현대백화점 아이덴티티 리뉴얼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fnt는 형태(form)와 생각(thought)의 머리글자로, 부유하는 생각을 유의미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만 수십여 가지를 생각합니다. 생각의 조각들을 시각화하는 방법은 디자이너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분명 유용할 것입니다. fnt의 이재민 디자이너와 마주한 시간을 공유합니다.
에세이 | studio fnt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이름을 그렇게 만든 배경이 궁금하다.
이재민 디자이너(이하 이재민) |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너무 상업적이거나 급진적인 이름은 피하고, 최대한 담백하고 중도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다. 더불어 고려해야 할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도 많았다. 가령, 도메인 주소를 얻기 쉬울 것, 검색 시 눈에 띌 것, 유행을 타지 않을 것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조건들에 부합하면서 형태와 사고를 중요시한다는 의미가 담긴 fnt(form & thought)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에세이 | fnt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가?
이재민 | 상업적인 프로젝트에 완전히 집중하는 스튜디오들과, 반대로 독립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스튜디오 혹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 둘에는 일종의 간극이 있으며 섞이기 어려운 것 같다. 우리는 양쪽을 느슨하게 아우를 수 있는 스튜디오를 지향한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순수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작업도 병행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파트너들과 함께 운영하기에 더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할 수 있는 것 같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 | 시각 디자이너는 직업적인 특성상 인쇄물(printed matter)을 많이 다룰 것 같다. 재료의 특성을 얼마나 고려하는가?
이재민 | 매체가 가진 독특함에 너무 의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너무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다 보면 사용자는 그 이미지보다는 물성을 기억하게 된다. 사실 그래픽 이미지 자체가 일종의 텍스처다. 가령 ‘까칠함’ 혹은 ‘끈적끈적함’과 같은 심상을 만들고, 그것이 최적화될 수 있는 물질을 탐색한다. 그렇게 접근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선택한 재료는 대단히 유니크한 것이 아니게 된다.
에세이 | 시각 디자인의 영역 중 타이포그래피는 텍스트와 긴밀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타이포 잔치)가 작년으로 4회째를 맞이하였다. fnt 또한 ‘타이포 잔치 2015’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참여한 프로젝트의 작업 배경이 궁금하다.
이재민 | 나는 큐레이터이자, 작품을 출품한 작가, 그리고 전시의 아이덴티티를 담당한 디자이너였다. 서로 다른 차원의 역할을 동시에 맡았기에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였다. 작업은 김경선 총감독님으로부터 전달받은 도시라는 키워드로부터 착안했다. 고대의 폴리스들은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기 전까지 더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돌보았다고 한다. 마치 엄마와 같은 모도시의 개념이다. CITY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C와 T는 자음(consonant)이고, I와 Y는 모음(vowel)이다. 흥미롭게도 모음을 생략해도 같은 소리가 난다. 괄호로 비워둔 그 자리는 어떠한 것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엄마의 온정이 부재한 도시의 빈자리가 전 세계로부터 초대된 작가들, 혹은 관객들의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위트 있는 시선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에세이 |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현대백화점 프로젝트는 꽤 많은 인력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보인다.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는가?
이재민 | 나와 파트너를 비롯한 전 스텝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큰 프로젝트로서 스튜디오에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많은 지점을 바탕으로 업무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업태의 특성 및 생산 단가를 비롯한 현실적인 운영 이슈들은 물론이고, 백화점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고려해야 했다. ‘The Hyundai’는 일종의 Identifier이자 동시에 Container이기도 하다. 즉 ‘현대’라는 브랜드가 노출되어야 하는 동시에, 입점한 브랜드나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입각해 시각적인 방향을 전략적으로 세분화시켜 접근했다.
에세이 | 마지막으로 현재 소위 ‘스몰 스튜디오(Small Studio)’라고 불리는 체제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재민 | 소위 ‘70년대 생-90년대 학번’의 디자이너들이 2000년대 중반 스몰 스튜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첫 주자 중의 하나이다. 소규모 스튜디오는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지였다. 요즘 들어 특히 스튜디오의 수가 많아졌다. 가령, 작년에 XS이라는 전시도 있었다. 아마 1년이 채 안 된 지금, 이미 사라진 스튜디오들도 있을 거다. 그리고 5년 뒤는 어떨까? 사실 우리 스튜디오도 매 순간이 위태롭다. 스튜디오는 설립이 전부가 아니다. 생산 활동을 영위하는 동시에 생계유지를 위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규모 스튜디오들의 탄생으로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동시에 시장에서의 단가는 붕괴하고 있다. 일종의 빛과 그림자다. 현재 시점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며, 또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지금-한국-서울’이라는 이 지점이 매우 힘든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도 스몰 스튜디오 체제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당위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나의 세대 혹은 후배 세대들의 유의미한 몸부림과도 같다. 그 자체가 비록 대단한 업적은 아닐지라도.
인터뷰 전문은 에세이 매거진 2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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