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그 실천의 어려움
창간호에 실릴 칼럼을 위해 무작정 미니멀리스트에 관해 쓴 지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라프 시몬은 디올에서 캘빈 클라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헬무트 랭은 새로운 디렉터를 영입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은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했음에 떳떳해지기 위하여 그간 열심히 비워내고자 했다. 오래되고 쓰지 않는 물건들부터 마음속 쓸데없는 상념들까지. 그 결과 과거로 향해 있던 삶의 에너지로 하여금 미래를 마주하도록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모두 버리면 비로소 가치 있는 일상을 맞이할 것만 같았지만 때로는 공허함이 밀려드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미니멀리즘 열풍이 식지 않는 만큼이나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방법론과 이미지에 길들여졌음을 반성했다. 돌이켜 보면 미니멀리즘은 얼마나 더 많은 물건을 내다 버리거나, 더 적게 소유하는지를 경쟁하는 일이 아니다. 중고책을 정리하고 하얗게 칠한 벽에 루이스 폴센의 PH5를 설치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거다. 자칫 획일화된 시각적 연출에 그치면 미니멀리즘보다 공허함에 빠지기 쉽다. 어떠한 삶의 방식이든 고유한 취향과 애정 없이는 온전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여러 실용서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마주쳤다. 무인양품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우리 주변의 흰색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온전한 한 권의 책을 남겼다.
우리 주변의 백. 그것에는 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얗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을 찾아서는 안 된다. 백이라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백이라는 감수성을 찾음으로써 우리는 평범한 백보다 더 하얀 백을 의식할 수 있다. (하라 켄야, «白»)
하라 켄야가 말하는 '평범한 백 보다 더 하얀 백'은 어쩌면 나에게 밀려온 공허함을 떨쳐버린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그렇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공허함마저 비워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미니멀리즘은 에센셜리즘(essentialism)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브랜드에서나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에센셜한 디자인을 내놓는 디자이너 라프 시몬이 미니멀리스트로 불리는 것처럼.
사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오해는 비단 SNS의 정형화된 피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도날드 저드는 외관이 단순한 작품을 내놓으며 미니멀 아트를 이끌었다. 우리가 소위 미니멀하다고 불리는 것을 심플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 한몫 기여했으리라 본다. 하라 켄야가 백을 찾기보다는 백이라고 느끼는 방식을 찾으라 했듯이 시각적 형식 이면에는 뚜렷한 목적과 정신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니멀 아트의 배후에는 예술이 다른 어떠한 것도 재현하지 않는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미적 모더니티가 깔려 있었다.
모두를 버리는 건 쉽지만 그 빈자리를 진짜 가치 있는 것으로 채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핵심적 기능만 갖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완성해 내는 일이 그렇듯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 더 어렵다. 일상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훈련과 세밀한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미니멀리즘도 하나의 온전한 삶의 방식이기에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는 그 지점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Less is More를 주장해온 디터 람스마저도 최근 어느 매체의 인터뷰에서 단순함의 어려움을 실토한 적 있다. 끝으로 그가 인용한 다 빈치를 재인용한다. “‘단순미’는 특히 달성하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디터 정진욱 Chung Ji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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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전문은 에세이 매거진 3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