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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매거진 Jun 05. 2017

대자연의 위로를 노래하다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에 관하여

낮동안 내방이 품은 해로 몸을 덮어 가만히 누웠다가 이내 옆으로 돌아누웠다. 다리를 굽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나니 하루가 몰려왔다. 이윽고 해가 지고 낯설게 느껴지는 방을 보드라운 이불속에 숨어 차분히 바라보았다. 모르는 언어로 가득한 공간에서 조금 휴식이 필요했다. 마치 잔잔한 양수 속에 웅크린 태아처럼. 바로 이 순간 듣기 좋은 음악을 소개하려고 한다.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노래를 알게 된 건 아마 젊은 예술가의 현실을 토닥이던 날이었다. 이러쿵저러쿵해봐야 돈 없고 가난한 예술가라는 사실이 변치 않아 슬퍼한 날에 처음 들었던 음악. 대체적으로 북유럽 음악은 무언가 설명되지 않는 묘함이 있다. 그 분위기가 슬프기도 하면서 동시에 설레기도 하는데 무엇보다도 마음 한편을 미묘하게 흔든다. 거기에는 대자연을 가진 자들만이 표출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들만이 풀어내는 신비하고 창조적인 이야기. 단언컨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밴드가 바로 시규어 로스였다.


© image courtesy of Ryan McGinley


그들의 가사는 아이슬란드어, 영어 그리고 희망어로 쓰인다. 희망어는 보컬을 맡고 있는 욘 소르 비르기손(Jon Por Birgisson)이 만들어낸 언어다. 사실상 문법의 규칙이 있거나 구체적 뜻을 지녔다기보다는 뜻 없는 소리들의 집합이라고 봐야 좋을 것이다. 노래의 일부만 희망어로 구성된 곡도 있긴 하지만 노래 한 곡이 모두 희망어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심지어 전곡이 희망어로 구성된 앨범도 있다.


희망어는 아이슬란드어로 말하면 Vonlenska, 영어로는 Hopelandic이다. 어학사전에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a made-up language (created by band Sigur Ros) which the sound of the word is a meaning and a story to eachindividual.’ 당연히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서도 한 곡이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선율만으로 이루어진 연주곡도 아니며 그 위에 분명한 목소리와 음절이 있다. 알 수 없는 말의 나열이라고 생각하면 그 노랫소리가 신선하고 신기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들의 노래를 듣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고, 어둑한 저녁 생각 없이 길을 걸은 적도 있다. 생각을 비워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음악을 통해 생각을 비울 수 있다는 것, 마침내 유에서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노랫말이 있는 곡은 그 가사를 곱씹게 되어 개인의 어떠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한편 연주곡 또한 그 곡이 가진 뚜렷한 감정을 전달한다. 어쩌면 이 둘의 교집합 속에서 시규어 로스의 희망어가 새로이 탄생했을 것이다.


© image courtesy of Ryan McGinley


이토록 뒤죽박죽한 말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는 살결에 닿은 섬유의 감촉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유연제와도 같은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더욱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호함과 동시에 뚜렷한 소리를 지녀 각자의 우주를 둥실둥실 떠돌 수 있는 음악. 귓가를 맴돌다 스며드는 소리가 몸속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오늘 밤 나는 여전히 차가운 이불 위에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위로를 받는다. 마치 엄마의 품속에 웅크린 아이처럼.


© image courtesy of Ryan McGinley


객원 에디터 고지현 Go Jihyun

사진 Ryan McGinley




기사의 전문은 에세이 매거진 3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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